“비화가야 지배층 금동관, 창녕서 제작 가능성”
“비화가야 지배층 금동관, 창녕서 제작 가능성”
  • 양철우
  • 승인 2023.01.31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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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63호분 출토 유물 분석 결과
창녕 내 수공업 집단 자체 제작 가능성 근거 확보”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금동관이 창녕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보존과학센터와 함께 지난 2020년 10월에 63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분석한 결과를 31일 공개했다.

사적으로 지정된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와 관련한 대형 무덤군이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으로, 당시 지배층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63호분은 일대 무덤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 흔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63호분에서 나온 금동관은 높이가 약 22㎝, 둘레가 47㎝ 이상이다.

귀금속을 수은과 결합해 물체에 바른 뒤 수은을 증발시켜 도금하는 방법인 기법을 활용해 구리 표면을 도금해 만들었다.

관의 형태를 보면 맨 아래에 너비 약 3㎝의 관테(관을 쓸 수 있게 만든 띠)가 있고,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 3개를 세웠다.

연구소 관계자는 “관테 아래에는 길게 늘어뜨린 장식이 있는데, 여기에 부착된 반구형 장식과 원통형 장식은 직물로 추정되는 것을 꼬아서 연결했다는 점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금동관 안쪽에서는 고대에 사용한 경금(經錦)이 확인됐다.

경금은 날실에 색실을 써 이중 조직으로 짠 견직물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경주 천마총,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등에서 발견된 바 있다.

연구소는 “경금은 두께감과 광택으로 금관의 장식성을 강조했다”며 “금동관 안에 받쳐 쓰는 천으로 만든 고깔 모양 모자로 추정된다”며 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 금동관을 창녕 지역에서 만들었을 수 있다고 봤다.

금속가공기술이 뛰어났던 신라에서 만든 뒤 지방으로 분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관과 비교하면 도금층이 얇고 표면 색상 등도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슴뿔 모양 장식이 없는 ‘출(出)’ 자형 장식 역시 경주가 아닌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창녕 지역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창녕 내 수공업 집단이 금동관을 자체 제작했을 가능성의 근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 결과는 신라와 창녕 비화가야 등 고대사 연구에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연구소 측은 “추후 신라 금동관과 정확하게 비교·분석한다면 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양철우기자·일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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