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의 봄소식 ‘입춘채 꽃상’
[경일춘추]진주의 봄소식 ‘입춘채 꽃상’
  • 경남일보
  • 승인 2023.02.02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봄이 보내온 첫 번째 편지를 받는다. 입춘이다. 입춘은 태양이 지나가는 각도에 따라 정해진다. 올해는 2월 4일 오전 11시 43분에 봄이 든다. 입춘에는 오신채를 먹는다. 입춘 나물이라는 뜻으로 입춘채(立春菜)라고도 한다. 겨울 땅을 뚫고 나온 달래와 부추, 움파, 양파, 미나리나 무의 새싹 같은 것들이다. 향과 맛이 강하다. 입춘채는 궁중 수랏상에도 올랐고 임금은 다섯 가지 나물로 차린 오신반(五辛盤)을 신하에게 내렸다.

고려시대에는 입춘 날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비단 깃발인 ‘춘번자’를 머리에 꽂았다. 흙이나 나무로 인형이나 소를 만들어 문밖에 내놓아 ‘겨울 찬바람 다 가져가라’고 외치는 풍습도 있었다. 오신반의 풍습은 궁중에서 민가로까지 전해졌다. 오신채의 구색을 마련하기 벅찬 백성들은 파를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파는 입춘의 진상품이었다. 입춘에 오신채를 먹어야 사람의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추게 된다고 믿었다. 맵고 쓴 맛을 통해 생로병사와 독(毒)의 고통을 깨닫는 것으로도 여겼다. 코리안 허브로 세계적으로 각광 받고 있는 나물은 속이 편해지는 음식이다. 일본은 양력 1월 7일이면 나나쿠사(七草)라는 나물죽을 먹는다. 설날 연휴에 과식과 음주로 혹사당한 장기를 나나쿠사로 보한다.

입춘채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진주에서는 이 시기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움파를 빼놓지 않는다. 움파는 달고 부드럽다. 살짝 데치면 향긋한 맛이 난다. 진주비빔밥에 들어가는 속데기도 파 데친 물에 조물조물 무친다. 파는 수천 년 간 인류와 함께해 왔다. 절세미인 양귀비의 애인이었던 안록산의 회춘식이었고, 진나라 때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노동자들의 급식도 파를 곁들인 보리죽이었다. ‘파로 쌓은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것은 파가 원기를 돋았기 때문이다. 예기에도 고기와 같이 먹는 음식으로 봄에는 파, 가을에는 갓이라고 했다. 파에는 자극적 향을 내는 주성분인 황화아릴이 풍부하다. 미끈한 부분인 황화아릴은 에너지 생성을 돕는 비타민 B1을 활성화한다. 비타민 B1이 풍부한 돼지고기와 파는 음식궁합이 썩 잘 맞는다.

다섯 가지 입춘채와 돼지고기 수육으로 차린 오신반은 지친 몸과 마음을 새봄의 빛깔로 칠한다. 창을 열면 잔설 위로 어느새 따사로운 햇살. 올해도 입춘첩을 붙이며 나직이 희망을 얘기한다. ‘올봄에는 크게 길할 것이요(立春大吉), 따뜻한 기운 받아 경사가 많으리라.(建陽多慶)’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