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의 포엠산책(89)사람 인人(오세영)
강재남의 포엠산책(89)사람 인人(오세영)
  • 경남일보
  • 승인 2023.02.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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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등에 등을 기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랴.

어려울 때

슬며시 내주시는 아버지의 등.

슬플 때

넌지시 들이미시는 어머니의 등.

외로울 때

남몰래 빌려주는 친구의 등.

그의 체온과 숨결과 맥박이

고스란히 나와 하나 되어 모진 추위를 막아주는,

이 한겨울밤,

침대가 아니라, 침낭이 아니라

따뜻한 온돌바닥의 등짝이 내미는 그

어부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등에 업혀 그랬듯

적막한

우주의 숨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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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산책…… 어떤 말은 생각만으로 애틋함을 불러오죠. ‘등’도 그런 말에 속해있는 것 같아요. 시골에서 학교에 다닐 땐 비탈길을 1시간 걸어야 했어요. 대게 시골길이 그렇듯 좁고 위험했죠. 그래서 큰비가 오면 마을 어른들 누구라도 우리를 업어 길과 길을 건너게 해주어야 했어요. 골짜기를 거쳐 내려오는 빗물은 금방 불어나서 옷이 다 젖거나 간혹 냇물에 떠밀려가는 아이가 생기기도 했거든요. 누구의 아버지, 삼촌들이 우리를 등에 업어 차례로 길을 건너게 해주는 풍경은 제가 사는 시골에서 흔한 일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신작로가 생기고부터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사람은 사람에게 기댈 때 하나의 우주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그때 우리는 아버지 등에 업혀 각자의 우주 하나씩 만들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우리의 아버지들은 세월에 삭아 작아진 등이 되었겠죠.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는 그 시절 우리에게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등이었어요. 힘들고 외로운 누군가에게 등을 내미는 건 얼마나 갸륵하고 긍휼에 가까운 일인지. 내가 기대었고 기대고 기댈 세상의 모든 ‘등’에게 내 등 또한 기꺼이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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