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희 (갈전초등학교 교장)
아들이 군 복무를 위해 집을 떠나면서 “씩씩하게 잘 다녀올 테니 우울증 걸리지 말라”면서 자신을 대신할 그 무엇으로 ‘강아지’를 안겨준 지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 당시만 해도 개를 집 안에서 키우는 것이나 개를 안고 공공장소를 누비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부류 중에 나도 끼어 있었기 때문에 달갑지 않았다. 집안에서 키울 경우,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어야 할 상황이나 강아지 수명이 사람과 달라서 먼 미래의 이별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아들의 기특한 마음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오늘, 아들이 준 선물로 인해 나의 감정과 인식은 많이 건강해졌다. 자식들은 커서 제 갈 길 다 찾아 떠나고 빈 둥지만 남을뻔 했는데 아들이 선택한 반려견 재롱에 빈 둥지의 허전함은 느낄 겨를이 없다. 각박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달리던 나에게 매시간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 주었고 가족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까지 톡톡히 해 왔다. 그리고 그 작고 여린 생명체로 인해 나 자신과 사람만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는 계기도 되었다. 풋 이파리 하나, 버려진 생명 하나, 지구 환경과 기후 위기에도 은근히 관심을 가지게 될 줄이야!
요즘 TV 프로그램에는 유독 동물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편성돼 있어 눈여겨 시청하고 있다. TV 동물농장, 동물극장 단짝, 개는 훌륭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고독한 훈련사. 얼마 전 종영된 캐나다 체크인 등 등…,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요즘은 다섯 집 중 한 집은 반려견을 키운다니 반려동물과 공존하는 법과 기본상식을 꽤 얻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선물처럼 식구가 늘었다. 고성군 상리면 길가에 아슬아슬하게 버려져 있던 새하얀 강아지이다. 그 당시, 주변에서 다들 걱정하며 응원도 해 주었다. 당신들이 감히 하지는 못하지만 생명을 구했다는 대리 만족과 경계심이 많아 구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구조하고도 입양 절차도 지켜야 했고 심장사상충도 있어서 병원 신세도 많이 졌다. 지금은 두 마리 반려견과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도 했고 재미난 공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감사하게도 105동 주민들이 엘리베이트 안이나 산책길에서도 참 예뻐해 준다. 그들에게 무언의 보답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길가에 미처 치우지 못한 배변이 발견되면 내가 먼저 치우는 일을 한다. 사실 그 일은 정년 후에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데 몇 년 앞당겨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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