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부끄러운 고백
[경일춘추]부끄러운 고백
  • 경남일보
  • 승인 2023.02.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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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박성규 국립농산물품관원 의령사무소장


“술은 불가능한 일을 성사시키고 담배는 업무 능률과 동료 간 소통을 강화한다.” 공직 첫발을 뗀 신입사원 환영회식에서 고참 계장이 힘주어 한 말이다. 1992년 11월 첫 출근하던 날 선배들은 보란 듯이 책상 위에 재떨이를 놓고 집단 흡연을 했다. 그리고는 “박 주사 술은 잘 마시느냐, 담배도 피우느냐?” 라고 질문을 해와,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직원들은 “남자는 술, 담배 잘 하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며 답변에 만족했는지 모두 밝은 표정을 보여줬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유난히 일찍 담배를 배웠다. 어릴 때부터 곰방대를 쓰시던 할머니와 한방을 쓰면서 니코틴에 너무나 친숙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사춘기인 15살 중학생이 되던 날 언제부터인가 앞집 농업고교생들의 현란한 담배 연기 쇼를 보면서 애연가가 되고 말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흡연은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가방검사에서 담배 1갑과 성냥이 발견된 것이다. 사실 그 시절, 시골에서 중학생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일대 사건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일벌백계해야한다”며 퇴학시키고자 했고 담임 선생님은 “퇴학만은 면하게 하자”고 간곡히 부탁했다. 어머니는 빌고 또 빌었다. 덕분에 퇴학은 면했으나 1학기가 끝날 때까지 근신 처벌을 받았다 그렇게 중·고·대학교 학창시절과 군대, 사회생활 내내 담배는 나와 떼려야 뗄수 없는 일부가 됐다. 이를테면 희로애락을 같이 한 애증의 기호품이었다. 피곤해서 목이 안 좋을 때도 걱정하는 이들에게 “원래 허스키하다”며 낭만을 부리기도 하고, 회식자리에서 가끔 절대 명언으로 인식한 고참의 ‘담배와 술 유용론’을 설파했다.

하지만 이 말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장장 40년이 지난 후였다. 2021년 치아 모두가 망가져 자연 치아는 하나도 없이 잇몸 이식과 임플란트 대 시술을 받은데 이어 후두 백반증(후두암 전단계)이란 진단까지 받았다. 이 모든 것이 담배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됐다, 금연 밖에 답이지만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심각한 금단 증상으로 공황장애까지 경험하고 이제 1년을 넘겼다. 14살의 부끄러운 고백, 그 뒤늦은 참회의 시간 뒤에는 돈과 건강의 상실이 있었다. ‘담배는 질병’ 이란 공익광고처럼 마약과 같이 끊기가 힘들다고 다들 말한다. 행여 아직도 담배 연기 속에 갇혀 있는 분이 계시다면 부끄러운 고백이 되지 않게 담배와 영원한 이별을 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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