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39]무등산 눈꽃 산행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139]무등산 눈꽃 산행
  • 경남일보
  • 승인 2023.02.16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기 머금은 겨울 햇살 지나 비로소 만나는 절경
 
무등산 정상.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무등산

눈꽃 산행지로 유명한 곳은 한라산 윗세오름을 비롯해 덕유산, 태백산, 소백산, 선자령, 그리고 무등산 등이 있다. 세모에 덕유산 눈꽃 산행을 다녀온 뒤, 새해를 맞이해 무등산 눈꽃 산행을 떠났다. 필자에겐 무등산 눈꽃 산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에 갔을 때는 너무 춥고 바람이 세게 불어 정상 근처에서 추위랑 강풍과 싸우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내려온 적이 있었다. 이번에 떠난 무등산 눈꽃 산행은 서석대와 입석대, 무등산의 풍경을 여유롭게 만끽하고 내려올 수 있길 기대하며 출발했다. 진주에서 2시간 30분여를 달려 눈꽃 산행 출발지인 증심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해발 1187m의 무등산은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고귀한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 ‘무등’이란 말은 불교 용어로, 평등이 크게 이루어져서 평등이란 말조차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다만, 처음부터 무등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기보다는 광주의 옛 이름인 ‘무들’을 음차하면서 뜻 좋은 이름을 붙이기 위해 불교 용어인 무등(無等)을 차용해 무등산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크다. 2013년 3월, 우리나라의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은 전남, 광주 지역의 진산이다.

온통 눈 세상을 기대했던 무등산 초입은 눈 대신 한기 머금은 겨울 햇살이 필자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4년 전 첫 무등산 트레킹(걷기 여행) 때는 원효사에서 출발해 무등산 옛길- 목교-서석대-입석대-장불재-규봉암-이서분교 경로로 산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증심사주차장-의재미술관-증심사-당산나무-중머리재-중봉-목교-서석대-입석대-장불재-규봉암-화순초등학교 이서분교’ 경로로 산행하기로 했다.

 
가파른 눈꽃길을 걸어 서석대로 향하는 탐방객들.
◇눈바람이 맞아준 눈꽃 산행

증심사를 지나 고개에 오르자 수령 500년이 넘은 당산나무 한 그루가 턱 버티고 서 있었다. 잎들을 다 떨군 느티나무인데도 그 수형이 무척 멋있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에 증심사에서 장불재까지의 3.5㎞를 트레킹 할 때 이 당산나무 그늘에 앉아 산행하는 시민들과 정담을 나누며 쉬었던 곳이었다고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중머리재까지의 2㎞는 아이젠 없이도 산행이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렸던 눈 대신 햇살이 내리쬐어 비교적 편안하게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중머리재에서 점심을 먹은 뒤 중봉을 향해 걸음을 떼자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돌길에 눈이 쌓여 미끄러웠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끼자 걸음에 안정감이 느껴졌다. 중봉을 지나 중봉 갈림길에서 서석대를 향해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하늘과 길, 산과 나무 모두가 눈이었다. 그렇게 기다렸던 눈이 이토록 힘든 세상을 만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힘은 들었지만 가지마다 눈꽃을 피운 나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탄성과 함께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서석대에 닿았다. 지난번에 보았던 주상절리는 사라지고 세차게 얼굴을 향해 부딪치는 눈발과 바람이 필자를 맞이해 주었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약 70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대표적인 주상절리가 서석대와 입석대다. 이 중 해발 1100m에 위치한 서석대는 한 면이 1m 미만인 돌기둥들이 약 50m에 걸쳐 동서로 마치 돌 병풍처럼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게 특징이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풍화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에 2005년에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이날은 주상절리의 절경 대신 눈바람만 눈에 가득 들어와 무척 아쉬웠다.

서석대 표지석의 글씨는 원래 검은색인데 음각된 글씨에 눈이 쌓여 하얀 글씨로 바뀌어 있었다. 4년 전에 서석대에서 바라본 광주는 보이질 않고 눈보라 치는 산등성이 너머 아련한 옛 기억만 하얗게 가물거렸다. 지난번에는 서석대에서 무등산 정상의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눈보라가 그것을 허락하질 않았다. 눈바람이 하도 드세게 불어서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내리막길을 더듬어 입석대를 지나 장불재에 닿았다.

 
눈옷을 입은 서석대 주상절리.
◇분별심 버려야 마주할 수 있는 풍경

화순군 이서, 동복 사람들이 광주로 오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지름길이 장불재다. 광주시의 전경과 무등산 정상부의 주상절리인 서석대와 입석대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고 노무현 대통령이 산상 연설을 했던 곳이기도 한 장불재, 눈바람이 거세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사방은 모두 뿌연 눈보라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주상절리 오각 돌기둥으로 무등(無等)의 신전을 만드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 무등산 신령님이 조화를 부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번에는 추위와 바람 때문에 무등산 풍경을 스쳐 지나가듯 조망을 했는데 이번에는 거센 눈바람 때문에 조망은커녕 필자의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들 정도였다. 무등산이 필자의 지나친 욕심을 알고 있었나 보다. 지난번에 장불재에서 바라본 광주시, 서석대, 입석대, 눈 덮인 무등산 정상 풍경을 만족해하지 못하고 더 멋진 풍경을 꿈꾼 나의 지나친 욕심에 눈바람이 채찍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구건조증이 있는데도 어쩐 일인지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과욕을 버리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면서 규봉암과 화순군 이서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불재에서 규봉암, 화순군 이서로 내려오는 길은 비교적 평탄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거세게 몰아치던 눈바람도 잠잠해졌다. 눈 내린 풍경만 절경으로 여겼던 분별심과 편견을 버린 필자 앞에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잎들이 모여 갈색 융단을 깔아놓았다. 눈길만큼이나 아름다운 길이다. 광석대 주상절리를 울타리로 친 규봉암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5시간 산행한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고 필자의 머리를 개운하게 해 주었다. 혹한을 건너는 일이 극기이면서 힐링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된 하루다.



박종현(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

 
증심사 뒷고개의 당산나무.
기암괴석을 병풍삼아 선 규봉암.
서석대에서 바라본 광주시.
무등산 국립공원 입구 표지판.
입석대 주상절리.
눈을 이불로 덮고 누운 돌너덜,
눈 쌓인 무등산 옛길.
눈속을 뚫고 중봉을 오르는 탐방객들.
눈으로 쓴 서석대 글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