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술판 궁도장
[천왕봉]술판 궁도장
  • 경남일보
  • 승인 2023.02.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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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다. 있다고 한다면 그건 반드시 활쏘기일 것이다. 읍을 하고 겸양의 뜻을 표한 뒤에 사대에 오르고, 다 쏘면 내려와서 술을 마시니 그 다툼은 군자답다.” 논어 팔일편의 공자님 말씀이다. 이 구절로 보아 공자도 내기 활쏘기를 했던 듯 하다. 활터에서 술잔도 나눴던가 보다. 주희 해설로는, 다 쏘고 나서 이긴 이가 읍(揖)을 하면 진 사람은 벌주를 마셨다는 거다.

▶꼭 패자의 벌주만이었겠는가. 승자도 함께 마시면서 즐겼으리라.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술을 나눠마신 시간이다. 활쏘기 경연(競演)이 끝나고 난 뒤 마신 데에 주목할 일이다. 경쟁을 마무리하면서 패자를 위로하고 승자를 추겨주는 점잖은 술잔. 품격을 지키며 나눈 풍류의 잔이었다.

▶지역 궁도장에서 활량들이 활쏘기 대회 직전에 걸판진 술판을 벌였대서 한차례 시끄러웠다. 진주 문산에 있는 남강정 궁도장에서 대회 참석자들이 사대에 오르기 전 한바탕 술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서부경남 5개 시·군 친선궁도대회에 참가한 궁사들이었다고 한다. 평소 습성이었을 게다. 술을 마셔야 떨리지 않고 활시위가 잘 당겨지며 과녘이 크게 보이는 걸까.

▶옛 성인이 활터에서 시합을 마치고 군자의 예로 마셨다는 그 멋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나. 하지만 활도 오늘날의 총처럼 인마살상 무기다. 이를 다룰 때는 기강과 수칙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 활도 쏘기 전에 둘러앉아 마시고, 활 쏘는 중간중간에도 잔질을 해 비난을 샀다. 사과를 했다지만, 이들이 먼저 익혀야 할 건 궁술 아닌, 궁도(弓道)일 것 같다.
 
정재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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