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노란 조끼 입은 아빠
[경일춘추]노란 조끼 입은 아빠
  • 경남일보
  • 승인 2023.02.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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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희 갈전초등학교 교장
변진희 갈전초등학교 교장


날씨가 참 변덕스럽다. 며칠 전 봄바람이 부는듯하더니 또 눈이 펑펑 내린다. 봄바람이 머리를 간지럽히면 학교에서는 아이들 맞을 준비로 더욱 분주하다. 우리 학교는 새 움이 돋는 달인 2월이 방학임에도 새 학년 맞을 준비로 시끌시끌하다. 학교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방학이면 선생님들도 방학인 줄 안다. 사실은 아니다.

3월에 새로 부임할 교사들도 2월에 미리 합류해서 교육과정의 방향을 이해하고 다양한 업무나 고민거리를 논의하고 편성하는 작업을 마치고 3월 첫날 아이들을 맞이한다. 그 중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아이들의 안전과 관련된 업무이다. 여기 혁신지구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횡단보도도 많다. 우리 학교도 수백 명의 아이가 길을 건너 등교를 하는데 아마도 혁신지구 내의 학교 관리자라면 모두 교통안전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울 것 같다.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도로를 바로 건널 수 있게 만든 보행 시설이라 운전자 입장에서 보면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하니 성가실 것이다. 우리 학교 주변 도로도 어린이보호구역이 지정돼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교통사고 위험이 도사리는 학생들의 등·하굣길 교통안전을 위해서는 운전자의 약속만이 아닌 사람어른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녹색학부모회를 조직해 교통 봉사 당번을 배정한다. 시청에서 지원해 주는 실버폴리스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정문쪽 11개의 횡단보도와 서문 쪽 2개의 횡단보도에서 어린이들의 안전한 통학을 위해 기꺼이 노란 조끼를 입는다. 내 아이나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소중하니 일 년에 한 가구당 한 번씩은 노란 조끼를 입어야 한다.

몇십 년 전에는 학교에 어머니회가 있었다. 각 학교에 조직됐던 어머니회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없어졌다가 수년간 녹색어머니회로 이제는 녹색학부모회로 정비돼 다시 탄생하였다. 그래서인지 아침에 교통 봉사 당번으로 ‘노란 조끼 입은 아빠’가 자주 보인다. 어느 날 아침, 안면이 있는 남자분이 노란 깃발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반갑고 감사한 마음에 ‘엄마는 어디 가고 아빠가?’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아내가 일찍 출근해서 본인이 교통 봉사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듯 한 어투였다. 양성평등이 보편화 돼 있는 요즘 세상에 또 내가 케케묵은 사고를 버리지 못한 부분이 있었구나 싶었다. 노란 조끼 입은 아빠, 참 보기 좋고 든든하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이 풍경은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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