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일요일 시골집, 가을걷이가 끝나고 어지러워진 집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대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더니, “니 성규 맞제. 엄마, 아버지 많이 닮았네” 딱 듣기에도 서툰 한국말 속에 나는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지금부터 42년전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시집간 순자 누나였다. 중학교 시절 한 번씩 한국에 올 때면 많은 돈을 친정에다 주는 바람에 그 집은 단번에 부자가 됐다. 그러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힘들게 일궈놨던 전답은 죄다 남의 손에 다 넘어가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허물어진 집터뿐이었다.
일본 이름으로 쥰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본행을 결정했던 그 누나다. “누나, 어쩐 일인데?”라는 물음에 “엄마도, 아버지도 다 돌아가시고 집도 없어 졌지만 그래도 내가 자란 곳 고향이 그리워서 무작정 방문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나는 니가 너무 부럽다.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고향이 있어서 좋겠다” 라고 했다. “기댈 수 있는 곳 고향”이란 말이 연신 귓전을 스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네 고향은 점점 소멸해 가고 있다. 농촌 인구 위기 문제는 촌각을 다툴 만큼 시급하다. 늘어나는 폐교, 잡목 속에 허물어지는 폐가 속에 고향도 함께 줄어드는 삭막한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그래서 지역소멸을 방지하자고 ‘고향사랑 기부제’란 제도도 생겼다. 이 제도는 열악한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를 위해 도입된 제도로 시행된 지 2개월이 지났다.
그럼에도 나는 주장한다. 다 좋지만 더 늦기 전에 귀향은 어떨까? 순자 쥰코 누나의 ‘기댈 수 있는 고향’을 찾아서 다시 고향을 찾는 귀향 운동이야 말로 진정한 지역소멸의 최선의 대책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귀향한 분들의 말씀은 대부분 살아볼만하고 평안하다고 한다.
‘수구초심’, 여우가 죽을 때는 머리를 자기가 놀던 골짜기로 향한다고 하지 않았나. 부디 귀향 운동이 제2의 상록수 농촌계몽운동으로 들불처럼 퍼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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