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충무공 김시민·이순신 철포에 전사했다
[경일칼럼]충무공 김시민·이순신 철포에 전사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2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안명영 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임진왜란에 조선군은 활 그리고 일본군은 철포(조총)로 무장했다. 활은 화살을 줄에 메워 함께 당겼다 놓으면 화살이 튀어 나간다. 철포는 공기 팽창으로 탄환이 발사된다. 화살이 날아가는 원인은 시위에 걸린 탄성력이며 탄환은 화약이 폭발하는 힘에 의한다.

김시민은 7일간 진주성 공방전을 벌여 왜적을 물리쳤으나 이마에 적탄을 맞고 며칠 뒤 죽었다. 풍신수길은 일본의 철포에 김시민이 전사한 사실을 몰랐다. 이듬해 반드시 그의 수급(首級)을 가져오고 진주성을 쑥대밭으로 만들라는 엄명을 내린다. 계사년 김시민 없는 진주성 전투에 6만의 민관승군이 전사하였다.

통제사 이순신은 수군을 거느리고서 적의 구원병을 패퇴시키고 전사한다. 선조수정실록 31년(1598) 11월 1일 임오 2번째 기사 명 만력 26년 “남해 경계까지 추격해 순신이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힘껏 싸우다 날아온 탄환에 가슴을 맞았다. 좌우가 부축하여 장막 속으로 들어가니 순신이 말하기를 ‘싸움이 한창 급하니 조심하여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말을 마치자 절명하였다. 조카 이완은 그의 죽음을 숨기고 순신의 명령으로 더욱 급하게 싸움을 독려하니, 군중에서는 알지 못하였다.” 이순신은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병사와 더불어 힘껏 싸우다 탄환에 가슴을 맞고 사망했다. 갑옷을 뚫은 탄환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임진년 4월 13일 저녁 무렵 소서행장이 이끄는 제1군 1만 8000명이 800척의 배에 분승하여 부산포에 상륙했다. 4월 14일 소서행장군은 부산진성 공격 3시간 만에 함락시켰다. 처음 보는 철포의 위력 앞에 조선군 사기는 여지없이 떨어졌다. 4월 15일 동래성은 공격 개시 2시간 남짓 만에 함락됐다.

철포는 용두로 화승에 불을 붙여 화약을 폭발시켜 밀어내는 탄환으로 사람이 죽을 정도였다. 철포는 일본 전국시대를 마무리하는데 성능을 인정받은 무기이다. 일본은 1543년 9월 타네가시미(種子島) 도주는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철포를 구입한다. 대장장이 야이타는 도주의 명대로 철포(鐵砲)를 분해해 10년 동안 3000여정을 생산했다. 철포 또는 종자도총으로 불렸다. 명나라는 1548년 포르투갈 총을 입수 모방하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조총이라 하였다. 청나라 이후 조총(鳥銃)의 총을 창으로 바꿔서 조창이라 부른다.

우리나라가 조총이 있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선조수정실록 22년(1589) 7월 1일 병오 2번째기사 명 만력 17년 “평의지 등이 공작 1쌍과 조총 수삼 정을 바쳤는데, 공작은 남양 해도로 놓아 보내도록 하고 조총은 군기시(軍器寺)에 간직하도록 명하였다”고 썼다. 조선은 일본 사신이 바친 철포를 중국식으로 명명한 조총으로 차용하여 단단히 자리매김하였다.

활로 새를 잡는 데는 예리한 화살과 체력이 바탕 되고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총은 간단한 사용법으로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고 전쟁 양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임진왜란에 조선인 포로는 3만에서 10만명으로 추산되며 송환된 포로는 소수이다. 일본은 나가사키에 노예시장을 개설했다.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리고 마카오에서 다시 노예 상인에게 넘겨 세계로 팔려 나갔다. 수십명의 노예 대금은 철포 한 자루 값이다. 더 많은 철포를 구입하기 위하여 왜적은 노예사냥에 광분했다.

임진왜란에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고 의관승군이 전사했다. 충무공 김시민, 충무공 이순신도 포함되며 새 잡는 조총이 아니라 일본의 신식 무기 철포에 전사한 것이다. 국어사전에 ‘조총은 임진왜란 당시 성능이 뛰어난 개인화기이며 철포라고도 한다’를 첨가하면 임진왜란 영웅들의 전사를 명예롭게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