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진주 관아의 별미 ‘교방 꽃국수’
[경일춘추]진주 관아의 별미 ‘교방 꽃국수’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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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이학박사
박미영

 

1123년 벽란도에 송나라 사신단이 도착했다. 고려 왕실은 그들에게 열 가지 음식을 제공했다. 처음이 국수이고 진귀한 해산물이 차례로 나왔다. 그릇은 금은을 입혔고 나무 소반에는 옻칠을 했다. 사신의 이름은 서긍(徐兢, 1091~ 1153). 고려에 한 달간 머물면서 보고 느낀 풍속을 40권의 책으로 남겼다. 올해로 편찬 900년이 된 ‘고려도경’이다. 고려왕실이 열 가지 음식 중 국수를 첫 번으로 차린 것은 국수의 본산지인 송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춘 것이었다.

고려의 국수는 신분을 구분 짓는 잣대였다. 1390년 공양왕은 품계에 따라 제례 음식을 정했다. 1품에서 6품까지는 국수를 올렸고 7품 이하가 국수를 쓰는 것은 불법이었다. 나라 안에는 밀이 적어 모든 밀은 중국 산동지방에서 수입했다.

고려시대 양반의 국수는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더한 백면(白麵)이었고 백성의 국수는 메밀가루나 콩가루에 녹두녹말을 섞었다. 바가지에 구멍을 내어 내리던 국수는 조선 중기 진화해 통나무에 쇠판이 달린 국수틀이 등장했다.

진주 관아에는 세면(細麵)이 별미였다. 세면 중 골동면인 비빔국수는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이태리 파스타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으로 각광을 받았다.

교방 골동면은 매운 고추장이 아닌 간장 양념을 쓴다. 불고기 양념을 한 소고기, 표고버섯을 매실 소금으로 볶고, 황백 지단을 곱게 채 썬다, 숙주는 데치고 오이도 살짝 절여 참기름에 잠깐 볶으면 식감이 좋다. 실고추 잣, 배로 색을 맞춘다. ‘교방 꽃국수’다. 물국수 형태로 낼 때는 고소하고 뽀얀 깨즙에 말아낸다. 교방 꽃국수는 모든 재료를 최대한 가늘게 채 썰어 고명이 면과 따로 놀지 않는 게 특징이다.

조선 후기 진주에서는 건면까지 유통되고 있었다. 앉은뱅이밀 덕분이다. 국수 1타래의 본전은 6푼으로 달걀 9개 값이었다. 진주 앉은뱅이밀은 껍질이 얇아 제분량이 많고 부드럽다. 유엔이 교류하는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인류가 보존해야 할 식품 유산’으로 이름이 올랐다. 전통음식 보전 운동인 맛의 방주(Ark of Taste)다. 우리 것으로는 울릉도 칡소, 진주 앉은뱅이 밀, 제주 푸른콩장, 태안 자염 등이 있다.

토종밀로 만든 꽃국수는 글루텐 함량이 적어 속 더부룩함이 없다. 고명의 분량을 조절해 탄수화물을 줄일 수 있다. 매화꽃 흩날리는 향기로운 계절. 교방 꽃국수에도 오방색 봄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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