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이상(李箱)의 이상한 이름
[경일춘추]이상(李箱)의 이상한 이름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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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도립 남해대학교 교수
김은영 도립 남해대학교 교수


시인 이상(李箱)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그의 조부가 지어준 이름이다. 귀하게 얻은 첫 손자가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라 한다.

해경의 부모 김연창과 박세창은 배운 것 없는 볼품없는 사람들이었다. 조선총독부 관리로 일하던 큰아버지 ‘김연필’은 슬하에 친자식이 없었다. 조부와 백부의 기대는 해경에게 오롯이 쏟아졌고, 해경은 3살 때부터 본가로 보내져 부모의 따뜻한 사랑도 받지 못하고 백부의 장자 겸 종손으로 자란다.

게다가 어린 시절 해경은 유난히 흰 살색과 수려한 외모 탓에 학교에서 ‘흰 여우 새끼’라고 놀림을 받곤 했다. 영특하여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곧잘 하는 모습을 보고 낫살깨나 먹은 동급생들이 시기해 놀려댔다. 이때부터 해경은 자신을 ‘이상(異常)’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의 고통을 그는 이른바 ‘제웅의식’으로 표현했다. ‘제웅’이란 짚으로 만든 액막이 인형을 말한다. 가정이라는 시에서 그는 자신을 제웅으로 묘사하며, 바늘로 액막이 인형을 찌르듯 달빛이 자신과 자신의 집을 찔러댄다고 표현했다. 또 혈서삼태(血書三態)라는 글에서는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하이드 씨와 하이드 씨’로 진화된 존재로 묘사하기도 했다. 해경은 1929년 4월 경성공고 졸업과 동시에 총독부 건축과 기사직으로 취직한 후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21세부터 23세까지 무려 2000점을 썼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습작이다. 특히 백부가 사망한 22세 때부터 이상은 폐결핵 발병과 각혈의 와중에도 문제작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다. 거울놀이나 숫자놀음, 수수께끼 같은 장치 등 상처투성이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심리로 점철된 그의 작품은 지금도 난해하다는 평을 듣지만, 당시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오감도 시 15편은 ‘미친놈의 잠꼬대’라는 혹평 속에 연재를 중단해야 했을 정도다.

필명을 ‘이상’이라고 지은 것도,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김상’을 ‘이상’이라고 잘못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 친구 화가 구본웅이 선물한 오얏나무 화구상자에서 착안했다는 설 등 다양하지만, 결국 이 이름은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남다른 이상한 존재, 분열된 자아로 인식했던 자아정체성의 유희적이고 다다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어쨌든 ‘이상’은 ‘이상(異常)’ 혹은 ‘이상(理想)’ 혹은 그 ‘이상(以上)’으로도 다양하게 읽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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