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자녀의 배낭여행, 무엇을 걱정하시나요?
[여성칼럼]자녀의 배낭여행, 무엇을 걱정하시나요?
  • 경남일보
  • 승인 2023.03.08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인생에서 가장 큰 공부는 여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은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녀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녀가 배낭여행을 간다면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가? 자녀가 여행을 간다면 가정 먼저 무엇을 걱정할까?

얼마 전, 제대한 아들이 같은 시기 군 복무를 마친 친구와 여행을 갔다. 군대 월급 일부를 모아 여행 계획을 짰다고 했다. 그저 기특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계획을 환영해 주었다. 실제로 제대하고 2주일 정도 여행 준비를 하더니 떠났다. 무사히 다녀오길 바라는 염려가 있을 뿐, 뜻깊은 여행이 되길 응원해 주었다.

같은 나이의 대학생 딸을 둔 지인이 딸도 친구와 여행을 간다고 했다. 설레고 부푼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딸을 지켜보았다. 무사히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딸의 여행을 응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아들의 여행을 응원하는 나의 마음과 사뭇 달랐다. 여기서 공통적 질문을 해본다. 당신은 자녀가 여행을 간다면 무엇을 걱정하시나요? 당신의 자녀인 ‘아들의 여행’과 ‘딸의 여행’은 같은가요? 딸의 여행을 지켜보는 당신은 무엇을 걱정하시나요?

단지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만 응원하던 ‘아들 부모’인 나는 ‘딸의 부모’가 치르는 비용이 다르다는 것을 깊이 공감했다. 역시나 여행을 다녀온 딸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예약된 숙소에 들어선 그녀들이 방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로비에 있던 남성들이 그녀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는 것이다. 본인들을 응시하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고 힐끗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들에 대한 예의 따윈 무시하듯 음흉한 눈길을 끝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모욕과 불쾌함과 함께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 그녀들은 결국 숙소를 옮겼다고 한다. 집단이었다면 집단의 힘으로 이겨냈을 테다. 단둘이 해외에서 그 상황에 대응하지 못한 채 무력감과 불안으로 도망가듯 숙소를 옮겼다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가 말했다. 얼마 전 딸이 친구들과 글램핑장을 갔다고 했다. 친구들은 남학생 3명이었다. 글램핑을 가기 전 남학생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마치 ‘어떤 미친 부모가 남학생들이 가는 글램핑에 딸을 보내냐’는 전화였다고 한다. 본인의 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전화였다고 한다. 아들을 가진 학부모는 남학생들과 같이 글램핑을 하는 여학생을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걱정한 것일까? 각자의 생각에 맡기겠다.

이렇듯 성차별은 비용을 치르게 한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비용이다. 불안만큼 치러야 하는 큰 비용은 없다. 자녀가 바라던 여행을 갔을 뿐인데, 딸의 부모도 여학생과 숙박을 하는 아들의 부모도 모두 비용을 치렀다. 성차별이 없다면, 성에 대한 인식이 남녀가 다르다지 않다면, 성이 평등하다면 우리는 이런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각자는 성차별로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을까? 성차별은 자유를 구속하는 비용을 치르게 한다. 자유를 통제하는 비용은 큰 갈등이 따른다. 자유를 지배하는 비용은 큰 고통이 동반된다. 자녀가 딸이기 때문에, 아들이기 때문에 생각의 자유를 구속하고, 몸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를 통제하고, 선택과 결정의 자유를 지배하게 된다. 자녀가 딸이어서 아들이어서 치르는 비용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성차별로 우리는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고, 자녀들은 또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