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은사(恩師)
[경일춘추]은사(恩師)
  • 경남일보
  • 승인 2023.03.1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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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3월이다. 초중고 대학 할 것 없이 설렘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는 물론, 저마다 바라는 선생님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많을 것이다.

학창시절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고 꼭 한 번쯤 뵀으면 하는 선생님 한 두 분 정도는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중학교 시절, 그 선생님과의 인연이 42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너무 선명하다.

선생님은 체구가 작았지만 까만 뿔테 안경너머로 유난히 큰 눈망울을 가졌다. “내 이름은 오○○, 역사 과목이 담당이다” 첫 발령을 받은 여선생님은 대구가 고향이며 동양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그 선생님께서 운영하는 향토역사연구반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1학기 내내 대웅전 건축 양식, 석탑의 형태 및 변천 과정, 탱화(불화), 석등에 한국 불교문화사에 대해 화보 위주로 강의했다. 어느날, 화보 설명 대신, 백지를 나눠 주면서 여태껏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전문 지식을 담아 감상평을 적어 제출하라고 했다. 대부분 친구들이 백지 상태로 제출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느낌을 빼곡히 적어 냈다.

선생님은 “역시 성규가 수업태도가 좋더니 잘 썼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가로 나에게 향토유적답사 기회가 주어졌다.

이른 가을, 아침 의령 수도사라는 절에서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장학습을 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칭찬하며 사학과 전공을 권했다. 먼지 나는 비포장 길을 걸었지만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읍내에서 늦은 점심시간은 너무도 행복했다. 당시 그토록 맛있는 자장면은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하동 쌍계사 답사까지 약속했다.

그 이후 나는 다른 수업 시간에는 떠들고 개구쟁이 짓을 했지만 국사 시간만큼은 가장 모범생으로 변해 있었고 시험에서는 늘 100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듬해 3월 그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홀연히 떠났다. 나는 마지막 인사 하는 임시 소집에 차마 가지 못했다. 개학 후 1학기 내내 뭔가 허전함과 그리움이 가슴 깊이 드리웠다. 선생님의 깊은 사랑을 가슴에 담았고 진정 존경의 마음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요즘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눈치를 본다고 한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오늘 그 옛날 수도사를 다녀왔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듯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대웅전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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