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끊임없이 도주를 꿈꾼다. 북아프리카나 서아시아 어디든 모국을 찾아 이곳으로부터 탈주하고 싶다. 터키였을지, 이란이었을지, 이집트였을지 모를 원산지로 가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나는 도주를 꿈꾸는 나를 가두고 한국에 정주하고 싶다. 기원전 2000년대부터 존재했던 나의 조상들이기에 원산지 따위는 정확히 알 수도 없으며, 알 길이 없다. 도주하려는 나를 가두기 위해서는 촘촘한 그물망이 필요하다. 겨우내 입던 털옷처럼 북슬북슬한 그물을 치고 진정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물망이 안전망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탈주하려던 나는 나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탈주도 정주도 중요치 않게 되었다.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씨앗의 모국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멜론의 역사를 다시 쓰는 중이다.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