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학생 행사에 대한 감상
[경일춘추]학생 행사에 대한 감상
  • 경남일보
  • 승인 2023.03.2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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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진 진주교육대학교 도덕교육과 교수
김낙진 진주교육대학교 도덕교육과 교수


가끔은 찬바람에 자라목이 돼도 목덜미에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시절이다. 이럴 즈음이면 겨우내 한산했던 교정에 활기가 돈다. 학생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밝게 인사를 나누고, 이리저리 떠들썩하게 몰려다닌다. 신입생들이 학교생활에 가지는 기대감은 얼굴 표정과 몸짓에 드러나서 길에서 마주쳐도 1학년생임을 금방 알게 된다. 학교에는 학생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활동이 있어야 살아 있는 공간이 됨을 다시금 느낀다.

학생들은 제도가 요구하는 수업도 들어야 하지만, 또한 자율적으로 학생 행사를 진행해 간다. 매년 학생 행사들을 볼 때마다, 처음 이 대학에 문화제를 열었던 선배들이 제작한 초청장을 떠올린다.

‘너무나 기름진 터전에 자리한 교육의 요람이기에 또 하나의 자그마한 초석을 놓습니다’라고 중간을 이은 다음, ‘우리 함께 일손을 멈추고 달려와 시를 심고 아리따운 가락도 심으며 즐겨보지 않으렵니까? 짙고 깨끗한 국화향기를 입고…’로 마무리했다. 농업사회적 상상력과 어색한 표현에 미소 짓게 되지만, 어렵게 살던 시절 문화제를 마련한 선배들의 풋풋하고도 들뜬 마음이 전해져 가슴 뭉클해진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의 학생 행사가 변했다. 정치·문화행사는 줄어든 대신 음주를 동반한 모임과 연예인 초청 공연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변화가 전적으로 무가치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본말을 따져 균형을 찾았으면 한다. 내면을 성장시키려 정신 역량을 기르는 행위가 근본이라면, 밖에 있는 사물에 의존해 즐거움을 찾는 행위는 말단이다.

문화 소양을 갈고닦는 것은 요즘 강조하는 창의성 신장과도 직결된다. 이런 일을 하면서 땀을 흘리고 마시는 막걸리가 더 달고 여분의 시간에 즐기는 축하공연이 훨씬 즐거울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 에너지가 고갈되므로 열정이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노인은 청년에 비해, 경력자는 초임에 비해, 고학년은 저학년에 비해, 능숙함을 얻는 대신 처음의 설렘과 스스로 변화함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 의지를 잊는다. 그래서 때로 미숙했지만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해야 한다. 학생들은 신입생 시절의 열의와 처음 행사를 기획했던 선배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본질을 회복하고 일상의 활동에 변혁을 가하는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사는 일이 급해 잊었던 젊은 날의 소망을 추억해내는 것이 나이 먹어 가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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