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29)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29)
  • 경남일보
  • 승인 2023.03.23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79)최근 진주지역에서 나온 시집들(3)
오늘은 박기원 시인의 시집 ‘마추픽추에서 온 엽서’와 박진옥 시인의 시집 ‘메니에르’를 볼 차례다. 박기원 시인은 진주출생으로 대학시절 정일근 등과 ‘갯물’ 동인으로 활약했다. 지도교수는 고 신상철 박사였다. 그는 주약동 남가람문학회에서 공부하면서 2014년 경남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마리오네트가 사는 102동’과 이번에 나온 ‘마추픽추에서 온 엽서’가 있다. 그의 시들은 소문보다 먼저 달려나가서 시인의 등을 밀어주고 있어 보인다.

이번 시집의 표제시는 그의 친구가 30년전 페루의 마추픽추를 여행하던 중 보내온 엽서를 소재로 쓴 작품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거기를 다녀와 얼마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하는 비극을 맞이한다. 그런 뒤 엽서에 대한 답장이 없이 30년을 지냈고 이제사 그 엽서를 떠올리며 답장격의 시를 쓰게 된 것이다.

“마추픽추에서 엽서를 보내놓고 저 세상으로 떠난 자네에게/ 떠나기 전의 자네만 나에게 남겨 놓은 자네에게/ 여태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네 //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리움처럼 숨이 차는 그곳에/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눈물샘이 차오르는 그곳에/ 자네를 두고 올 수 없었던 나는/ 엽서를 받았을 때의 나의 나이만큼 지났건만 / 아직 가 본 적 없는 맞추픽추에 나는 살고 있다네”

시는 자네는 죽었지만 나를 맞추픽추에 남겨놓고 가버려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거기에 남아서 그대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이다. 아프다. 박시인의 시 속에는 <남강, 저 유등>이 있고 <폐쇄된 철길>이 있다. 반성역 같은 데가 그 철길이다. “비어 있는 철길 위를/ 바람이 덜컹 덜컹

지나가고// 녹슨 철길 위를/ 비가 칙칙푹푹 지나가고 있다.” 지나간 길은 추억이다. 역전의 나무 한 그루와 기울어지는 역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립다. 생각에 앞서가는 좋은 시인이다.

박진옥 시인을 생각하면, 무슨 일에든 열중하고 그 되풀이로 자기를 증진시키는 지독한 노력파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가 그런 숨 넘어가듯 노력하는 열중파다. 축구에 손홍민이나 메시 같은 귀재가 있는 것처럼 시에도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같이 숨쉴 틈 주지 않는 단련의 조련사가 있듯이 그는 스스로 조련사다. 필자는 백일장이면 웬만한 데는 가서 심사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 그는 반드시 책받침 하나 들고 지나가거나 멀찌감치 자리잡는 것을 본다. 입상꾼이 있지만 그는 참가형이다. 결정적 순간에 메시가 나타나고 손홍민이 나타나듯이 그는 떨어져도 무관한, 입상의 화려함에 반발하듯 백일장 그라운드의 코너킥 차는 자리에 볼을 가져다 놓고 있는 것을 본다. 어느 순간 그는 백일장의 천사가 된 것으로 보여졌다.

시집 ‘메니에르’에서 그는 그다운 시작품들이 국제농산물대회 한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여 잊혀지지 않는 지역 농산물로 경품이 되고 있음을 보고 놀랐다.

“지독한 꽃이다/가만히 있는 천정 쉼없이 꽃을 그려낸다./ 시커먼 꽃들이 온몸을 강타한다

세상에 하고 많은 놀이 중 꽃들을 위한 죽음 놀이라니” 이런 이미지는 어지럼증 같은 미니에르병의 그 어지럼과 흔들리는 증상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신선한 표현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