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른이 실종된 사회
[기고] 어른이 실종된 사회
  • 경남일보
  • 승인 2023.03.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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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진 다힘법무사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1980년대는 격변의 시대였다. 혹독한 군사정권이 시민들을 때리고 잡아 가두고…. 이 땅에는 절망밖에 없고, 희망은 이 땅 이외의 곳에서만 있을 것 같은 그 암울한 시대, 그런데도 우리 시민들은 견뎌냈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시민들은 이 군사정권의 폭력 앞에 굴복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나서 따끔하게 군사정권과 그 하수인들을 따끔하게 질책했기 때문이다.

1987년 1월, 명동성당에서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던 5·18 7주기 추모미사가 거행됐다. 이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명동성당에 진입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서자, 김수환 추기경이 경찰을 향해 일갈했다.

“성당 안으로 경찰이 들어오면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들,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우리를 다 넘어뜨리고 난 후에야 학생들이 있을 것이오.”

가톨릭에서 추기경은 왕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종전에는 추기경을 ‘전하’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전하를 넘어뜨려 밟고, 경찰이 성당을 진입한다? 어림없는 일이다.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초리와 대거리에 봉착하게 될 상황을, 아무리 군사정권이라고 해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과거 친구들과 등산팀을 결성해 자주 산을 탔던 때가 있었다. 영남 8경에 속하는 산으로 기억된다. 일기예보로는 날이 오후 들어 흐려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라는 소리를 들은 터라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올랐다. 그런데 산 중턱쯤에 올랐을까? 갑자기 진눈깨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더 산행을 계속했다가는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몰라 인근의 사찰로 대피를 했다.

오가는 길손이 드문 외딴 산중이라서 그랬을까? 웬 승려 한 분이 우리 일행을 붙잡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행 중 한 명이 그만하라는 의도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무슨 뜻인가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승려가 빙그레 웃으면서 또 끊임없이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를 피하려다 범을 만난 격이었다.

그 후 수년이 지나고 난 뒤 조계종 종정인 성철의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마침 성철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풀어놓았다. 여기서 성철은 질량불변의 법칙을 사용해 단 몇 마디만으로 그 의미를 해설해 놓았다. 다 아시다시피 성철은 초등학교만 나온 분이다. 그런데도 그 의미를 누구보다도 훨씬 깊이 있게 깨우치고 있지 않은가? 그 성철은 훗날 박정희가 해인사를 찾았을 때에도 산사에 칩거한 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불도의 한 길 만을 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지 않는가?

다음 어른은 문익환 목사이다. 젊었을 때 윤동주와 친구였던 그는 자신이 쓴 시를 본 윤동주가 ”너는 앞으로 시 쓰지 마라“고 핀잔을 주는 바람에 시작(詩作)을 끊었다고 한다. 그런 문익환이 끝없는 논란의 소용돌이를 감수하고 북한의 청년 학생 축전에 참석한 임수경을 데리러 월북을 한 사실이 있다. 물론 그 후에 국가보안법 혐의로 처벌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 땅의 청년이 북한에 들어가 오도가도 못한 상황에 봉착하자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국가보안법의 처벌 위협을 무릎쓰고 과감하게 북한행을 결행한 그 의지에 이 땅의 청년들은 열광했다.지금 우리 사회는 좌다 우다해서 끊임없는 갈등의 골에 파묻혀 있다. 만약 이 땅에 앞서 언급한 어른들이 계셨다면 이 번거로운 갈등의 골이 조금이라도 메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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