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 객원논설위원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전 세계가 전례 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는 경제문제만 풀면 됐다. 이때 태어난 것이 ‘케인즈언의 총수요 확대정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와 그 이후에 대처하고 다른 한편으로 대봉쇄로 급격히 침체된 경제문제를 회복해야 한다.
두 현안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세계의 경기순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 현안을 잘 풀 경우 ‘V자형’ 회복이 가능하나, 풀지 못하면 ‘I자형’으로 깊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사태와 그 이후에 잘 대처한다고 하더라도 경제문제를 풀지 못하면 ‘나이키형’으로 회복할 때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대 세계 경제는 ‘뉴 노멀(new normal)’로 요약된다. 종전의 이론과 규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용어다. 뉴 노멀 시대에 발생하는 모든 경제행위는 정확한 원인진단부터 어려워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경제는 ‘디스토피아’가 자주 발생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디스토피아란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은 발생 가능성과 파급력을 볼 때 ‘기후변화 대응 실패’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질병’의 영향이 가장 우려된다고 경고해 왔다.
통계학에서 뉴 노멀 시대에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현상은 ‘종 모양’의 정규분포로 설명된다. 디스토피아는 전형적인 꼬리 위험에 해당한다. 꼬리 위험은 정규분포상 양쪽 끝으로, 발생확률이 낮아 사전에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 디스토피아를 아무도 모르는 통치권역에 속하는 최상의 위험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화 질서에서는 미국 이외 국가들의 탈달러화 조짐이 뚜렷하다. 세계 경제중심권이 이동함에 따라 현 국제통화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점, 즉 중심 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 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국제 불균형 조정 메커니즘 부재 등이 심화되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세계무역과 국제통화 질서의 ‘틀(frame)’이 흐트러지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마찰이 본격화하면서 세계화 쇠퇴를 의미하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이란 신조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몇 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제시됐던 ‘세계화4.0’과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 사태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뉴 노멀 세계경제 질서 변화가 더 빨라지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의 이동을 차단했고 상품과 자본의 이동도 제한했다. 그 충격의 여파로 ‘세계화’보다 ‘자급자족(autarky)경제’의 필요성이 제기됨으로써 앞으로 각국 경제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여파와 경제문제로 인한 ‘디스토피아’를 현명하게 풀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이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권력이 집중되면 그만큼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겠지만 통치행위의 뿌리는 국민이고, 동반자적 시대에 모든 정책은 국민이 협조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각국은 집중된 정치권력을 국민의 협조를 구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당면한 양대 현안을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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