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0)
  • 경남일보
  • 승인 2023.03.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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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최근 진주지역에서 나온 시집들(4)
전 경상국립대 의대학장 함종렬 시인의 시집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후’(시와 편견)가 나와 눈길을 끈다. 그는 진주출생으로 동대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여 의대 부학장, 학장을 역임한 현직 내과 의사이다. 필자는 의사이면서 시인인 함 시인을 보면 온 집안이 의사가 되라고 닦달해도 끝내 연희전문 문과로 간 윤동주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적어도 함종렬 교수는 의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윤동주보다는 가내제절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는 북간도 이주 집안의 장남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일제치하를 안정적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의과를 가서 의사가 되든지 아니면 법과로 가서 법관이 되든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주 1세대들은 일본의 포학을 피해 멀리 북간도로 진출했기 때문에 일제의 코를 수시로 납작하게 하지는 못할망정 인정받는 일생이 되는 것이 가내제절에 좋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는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의사, 교수, 교사, 약사, 기자, 마도로스, 마약단속 경찰관, 감정사, 배우, 국회의원, 양봉업자, 법관, 출판업자, 건축업자, 현직군인 등을 꼽을 수 있다. 함종렬 교수는 현직 내분비 전공 의사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이후’, ‘인공호흡기’, ‘영안실 담장’ 등 인간의 생명에 관련되는 소재들을 주로 다룬다. 그만큼 엄중한 분위기를 준다.

“해부실습이 시작되고 매화가 졌다/ 핀 줄도 몰랐는데 졌다고 한다// 목련이 지더니 담쟁이 뻗어가고/ 내 마음 한 구석에도 모처럼/ 장미 한 송이 피어오르던 날/ 친구가 휴학했다는 것을/ 그때는 미쳐 몰랐다”(‘히포크라테스 선서 이후’에서) 의과대학 공부가 힘들다는 체험을 시로 옮긴 것이다. 해부실습은 생명을 다루는 직접적인 실습이므로 공부가 노력 이상의 어떤 정신에 유관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제목에 ‘히포크라테스’가 나오는데 말할 것도 없이 히포크라테스는 의술과 인술이 함께 가는 것이니 의사가 만일 환자의 생명과 인간적 숭고함에 예사로이 접근할 때 그 행위의 부적절은 도를 넘게 되는 것이리라.

다음 ‘인공호흡기(Ambu Bag)’를 보자. “5100호실 73세 남자/ 새벽 03시 10분 심전도 flat wave/ 남해군 삼동면 00리 마을/ 새로 오는 여명을 향해 떠났다// 식어가는 체온/ 굳어가는 폐포/ Ambu bag은/ 먹먹하게/ 마지막 강을/함께 건넜다// 녹슨 파란 양철 대문/ 무화과 나뭇가지/ 새 한 마리/ 장미 담장 너머/ 붉어진 하늘로 날아갔다/ 000씨 임종시각은 05시 10분입니다/ 기나긴 한숨처럼 기관이 제거되었다// 방파제 너머 멀리/ 목화 솜이불 같은 하늘이 내려오고 있었다// 파도에/ 자갈이 다시 바스락거렸다”

인용시는 병원에서 환자의 목숨을 붙여 죽어가는 환자를 장거리 자택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린 시다. 2000년 이전에는 환자가 병원을 포함해 집 밖에서 운명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치료 중 운명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족들은 환자를 집에 모시길 원했다. 이때 숨을 유지하기 위한 기구로 인공호흡기가 필요한데 차중에서 의사가 직접 사용해 무사히 자택까지 도착해야 했다.

환자가 자택에 닿았을 때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장미 담장 너머로 날아갔고”, “방파제 너머 멀리 솜이불 같은 하늘이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죽음 이미지의 적절한 활용은 의사의 임종 지키기 노력이 얼마나 긴박한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이 밖에도 ‘영안실 담장’이라는 특유의 분위기를 쓰고 있는데, 함 시인은 앞으로 병실 정서를 통해 병원과 환자, 고통과 진료라는 인술적 관계를 아름답고 우아한 것으로 형상화해 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이것은 시인 윤동주의 부모들이 못다 이룬 기대를 함 시인이 대신해 준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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