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봄의 배신
[경일춘추]봄의 배신
  • 경남일보
  • 승인 2023.03.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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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의령사무소장


세상 밖은 온통 봄꽃 천지다. 앞서 핀 매화를 선두로 이에 뒤질세라 진달래, 개나리, 조팝, 벚꽃까지 한 번에 일제히 다 피었다.

며칠 전 배 재배를 하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배꽃이 피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여태 30년 넘게 배 과수원을 해 왔지만 3월 중하순에 꽃 피기는 처음입니다” 농부의 목소리에서 위기와 당혹감이 느껴졌다. 모름지기 꽃 피는 시기는 꽃마다 정해져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꽃들이 피고 지는 게 자연의 순리임에도 유난히 올 봄은 그렇지 않다. 그 섭리를 무시하고 너도 나도 망나니처럼 여기저기서 무질서 속에 피는 꽃들…, ‘그냥 좋아라’ 하며 단순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이상 기후 속에 자연의 배신이 시작됐다. 이미 대구사과라는 대명사가 사라지고 전국 과일로, 감귤을 비롯한 만감류는 제주만이 아닌 남해안지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바나나까지 등장했으니, 지금 배꽃이 피었다고 이상할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벌써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관련 기관에서는 아열대농업 연구가 한창이고, 어쩌면 100여년 후에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 참나무가 자취를 감출 것이란 충격적인 연구결과도 있다. 즉 숲의 침묵, 소멸이 가져다주는 우리 일상의 변화를 후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런 생태계의 변화는 식물에 그치지 않고 있다. 조기에 꽃이 피다보니, 꿀벌을 비롯한 곤충들이 동면에서 깨어나 한창 활동할 시기에 가장 중요한 밀원은 이미 다 져 점차 꿀벌들이 소멸하고 있다는 소식을 몇 년 전부터 계속 접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도 사라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꿀벌은 우리식량을 생산하는데 있어 화분 운반과 수정이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환경 운동가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에서는 봄을 지저귀던 새는 더는 울지 않고 자연은 점차 소리를 죽어가는 이유를 환경오염과 화학물질이라고 말하며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만연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경고했다. 돌이켜 말하건대 봄의 배신이 아니라 인간이 봄을 배신했고 침묵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봄의 침묵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스스로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 깊이 새겨 작은 것부터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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