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우리나라 신분제의 개관
[경일포럼]우리나라 신분제의 개관
  • 경남일보
  • 승인 2023.04.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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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송희복 진주교대 명예교수


상것의 성은 ‘천방지추, 마골피’라고? 우리의 뿌리 깊은 편견이다. 천방지축은 ‘천방지축하다’에서 온 말인 것 같고, 마골피는 마소의 뼈와 가죽을 분리하는 작업에서 연상된 것 같다. 온양 방씨는 조선조 중인의 최고 명문 집안이었고, 수필가 피천득의 집안은 대대로 의관의 명가였다. 역사 인물 중에 천수경, 지석영, 마해송 등을 배출한 사례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신분제를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신라의 골품제가 있었다. 성골과 진골이 아니면, 모조리 속 빈 강정과 같은 골통이다. 한번 6두품이면 영원한 6두품이다. 이것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혈통이 좋은 집안을 두고,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하지 않는가? 신라의 골품제는 고려의 한품제로 이어진다. 귀족이 아닌 중간층은 관료가 되어 능력을 발휘해도 승진이 일정한 데 멈춰버린다. 고려 사회는 한 술 더 뜬다. 혈통적 신분제에다, 지역차별 신분제를 더한다. 지배 지역은 경·군·현이다. 경도 수도인 개경이 꼭짓점에 놓여 있다. 그밖에 동경(경주), 서경(평양), 남경(서울)이 있다. 피지배 지역으로는 향·소·부곡으로 나누어진다. 고려의 향리는 지방의 토착세력이었다. 동래의 동래정씨와 울산의 학성 이씨는 지금의 광역시인 부산과 울산을 지배한 세력이었다. 조선의 향리가 품계도 없는 기능직 하급 공무원인 것과 잘 대비된다. 고려의 중간층은 향리·정호(丁戶)·백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려의 신분제가 그나마 발전적인 것은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지방의 향리는 중앙에 진출해 문벌도 형성할 수 있었고, 실제로 왕비도 배출했다. 일반 백성인 군현민은 능력에 따라 정호도 될 수 있었다. 심지어 경주의 무지렁이 천민에 불과한 이의민은 지방의 세습적인 군반씨족(軍班氏族)도 아닌 주제에, 무인으로서 국가 최고 실권자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민권이 있는 일반 백성인 군현민을 두고, 고려에서는 백정(白丁)이라고 했다. 이 백정이 조선시대에 왜 천민으로 불러지게 되었는가? 세종이 가축을 도살하는 천민도 일반 백성인 백정처럼 대우하라는 명령 때문에, 백정이 소나 돼지 따위를 잡는 도살업자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 개국에서 임진왜란까지의 2백년은 평화의 시대였다. 나라가 안정이 되다 보니 신분제도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이 시기에 이런 얘기가 돌았다. 조선 인재, 반재 영남, 영남 인재, 반재 진주. 조선 8도의 인재 중에 절반은 영남에 있고, 또 영남 인재의 절반은 진주(권)에서 배출했다. 이 시기에 호남 인물도 중앙에 진출을 많이 했다. 영호남 인물의 전성기랄까? 그 이유는 수전(水田) 체제와 사림(士林)과 형성에 있었다. 이 시기에 이모작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영호남뿐이었다. 이런 경제적 이점과 함께 국가 이념인 성리학이 크게 발전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정여립 사건과 이조반정으로 인해 영호남이 몰락했다. 지역적인 차별은 평안도와 함경도도 마찬가지. 신분제와 지역 차별은 조선의 국력이 쇠잔해간 결정적인 이유였다.

반면에 백정해방운동은 조선이 망한 후인 20세기에 일어났다. 지금 4월이니까 1923년 4월에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 운동은 정확히 백년이 되었다. 이것의 역사적인 의미는 한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인격의 실현, 인권의 천명에 있다. 형평 정신은, 누구나 한글을 배우고, 개천에서 용을 내고, 민주화도 앞당겼다. 그런데 지금의 북한은 어떤가? 신라 성골보다 더 존귀한 백두혈통이 시퍼렇게 있다. 모든 기득권은 평양에 있다. 저울로 잰 것 같이 공평한 세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백 년 전의 지사들과 백정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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