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2차 가해는 직접적인 피해
[여성칼럼]2차 가해는 직접적인 피해
  • 경남일보
  • 승인 2023.04.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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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한 상급자가 ‘밥 먹으러 가자.’며 부하직원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구내식당으로 갔다. 식당 가는 길에 부하직원이 손을 뺐다. 같은 상급자가 이번엔 ‘커피 마시러 가자’며 같은 부하직원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도 자판기까지 가는 길에 부하직원이 손을 뺐다. 그 상사가 이번엔 ‘화장실 가자’며 손을 잡아 당겼다. ‘저 화장실 안가고 싶어요’하며 부하직원은 애써 손을 뺐다. 이런 일이 지속되었고, 어느 날 그 부하직원이 상급자를 성고충 상담실에 신고했다.

이 날부터 이 부하직원의 고통이 시작됐다. ‘어, 왜지? 신고하기 전이 괴로웠고 드디어 신고했으니 이제 그 고통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신고가 접수되고 피신고인에게 통보된 날부터 ‘피해자가 상사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피신고인과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상사가 손을 잡을 때 보다 피해자는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이것을 ‘2차 가해’라 한다.

젠더폭력에서 ‘2차 피해’란 젠더폭력 피해자가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사용자 등으로부터 폭력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입은 정신적·신체적·경제적 불이익 조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2차 가해란 젠더폭력 피해자에게 폭력 피해 신고 등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가하는 정신적·신체적·경제적 불이익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위 사건의 피신고인과 주변인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2차 가해는 “그러게 왜 웃긴 웃어? 그러게 왜 따라가? 그러게 왜 밥은 같이 먹어? 그러게 왜 차는 같이 마셔? 안 가면 되지, 따라간게 잘못이지. 손잡지 말라고 뿌리치면 되지.” 피해자의 행실이 피해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탓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고, 피해자가 빌미를 주고 원인제공을 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가해행위는 상사가 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피해자를 평가한 것이다. 피해자가 웃을 수 있나? 피해자가 가해자와 밥을 먹을 수 있나?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와 차를 마셔? 피해자면 가해자 손을 바로 뿌리쳐야지.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를 따라가. 피해를 입었으면 바로 신고해야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피해자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피해자가 웃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가해자와 같이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가 성 피해가 아니며, 두 사람 사이에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위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은 상급자가 동의도 없이 덥석덥석 자기 마음대로 손을 잡는 것을 신고한 것이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런데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부하직원을 평가하고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부하직원이 진작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 손을 빼보기도 했고, 상사가 마음 상하지 않을 만큼 거절 의사를 표해보기도 했다. 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해보기도 하고, 명백한 증거도 없는데 상급자를 신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가 늦어진 것이다.

위 상급자는 2차 가해가 인정되어 가중처벌을 받았고, 동료 수 명도 2차 가해가 인정되어 징계처분을 받았다. 2차 가해 엄중 처벌은 젠더폭력근절을 위한 노력 중 하나다.

2차 가해.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이런 말까지 등장 했을까? 성희롱·성폭력은 100% 가해자 책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런 2차 가해는 피해자가 피해 상황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반대로 가해행위는 용이해지기 때문에 젠더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에 대한 의심을 멈추고 지지할 때 우리가 사는 세상도 안전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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