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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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4.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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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최근 진주지역에서 나온 시집(5)
지금 필자의 손에 문젬마 시집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시산맥)가 잡혀 있다. 문젬마 시인은 본명은 문정임이고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금남중학교 교사, 진주MBC 구성작가로 일했다. 2011년 에세이집 ‘우연욕서, 문득 쓰고 싶다’를 출간했다. 방송국 구성작가를 지내고 “마음이 동하여 문득 글씨를 쓰고 싶다”는 의욕이 출렁거리는 자리는 시인이 앉을 자리다. 그의 이력 그 밑에는 ‘진주시 명품 개인 정원’이 있다는 것, 이름을 ‘詩詩한 뜨락’이라 붙였다는 정보가 주어져 있다. 과연 시를 짓든지 읽든지 그런 뜨락에 산다는 것 아닌가.

정원을 가꾸는 시인이 진주에 살고 있다니 시시하든 싱싱하든 정원은 우리에게 넉넉한 공간이됨은 물론 정서적 안정과 정신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오래전에 고성군 하일면 자란만에 서강대 김열규 교수가 귀향하여 인제대학 석좌교수로 출퇴근했었다. 하일면 자란만이 천하 제1경이라 하고 제2경은 하이면이고 제3경은 삼천포로 이름 순이라 하며 자연을 정원으로 노니시던 추억을 주변에 선사해 주셨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스스로 헨리 소로우처럼 자연이 된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이후 자연이니 정원이니 하는 멋을 들을 수 없던 것이었는데 이번에 문젬마 시인이 나타나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를 선물해 주는 바람에 ‘그 멋’을 떠올리게 된다.

“정원은 만원이다/ 북적이지 않는 꽃의 질서는 꽃의 미학// 나비는 좋을 것이야 소란스럽지 않은 사랑을 나누리, 꽃들 소맷부리 부여잡고 울진 않으리, 패악부리지 않으리, 꼴값을 치를 주머니 차지 않으리, 중인 환시리에 유유히 떠날 수 있으리, 서툰 애무 비웃음 사지 않으며 서두른다, 욕먹지 않으니 벌은 좋을 것이야, 다음 생에는 벌 나비로 태어나기 제비 뽑기로 정하기…”(‘꽃의 연대기’에서)

정원은 만원이지만 꽃의 질서가 있다, 나비가 있고 사랑이 있고 만남이 있고 여유가 있어 품격이 있는 공간이다. ‘유유히 떠날 수 있는 것, 삶의 향기가 있는 곳이니 벌, 나비 더불어 생의 생기를 키울 수 있는 곳’이다. 잃어버린 자유와 여유를 회복시킬 수 있는 공간, 그렇다. 현대가 잃어버린 여유와 생기를 저축해 놓고 있는 공간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꽃이고 잎이고 향기인/ 그늘에/ 조였다 풀었다/ 글썽이는 가을 여자// 천리든 만리든 그대에게 닿으리// 서늘한 연정 읽고 있는/ 오래된 정원”(‘오래된 정원’에서)

정원에는 가을 여자의 글썽이는 눈물이 있으니 참으로 인간적인 계절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정원이 ‘서늘한 연정을 읽고’ 있다니, 오래된 정원이 독서하는 고전 같은 분위기라니, 정원이 또 하나의 도서관일지 모르겠다. 책으로만 지식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꽃의 속삭임을 읽어내는 데서 지식 이상의 지식이 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쯤에서 ‘오래된 정원’이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싶어진다. 조용히 가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행보로 한 시간 반쯤 거닐다 오는 것처럼, 산책하다 오는 것처럼, 여행하다 오는 것처럼.

문젬마 시인의 ‘남강 가에서’를 읽는 재미도 있다. “우두커니 강물을 내려다보는 사람 곁에서 구경한다/ 낚싯줄 던지는 사람 곁에서 구경한다/ 개를 데리고 바삐 지나는 사람을 구경한다/ 흘러가 돌아오지 않을 사람 몇 생각한다/ 강 저쪽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을 치고 있다”

구경의 자유, 구경의 자연이 하나의 풍경으로 앵글에 잡힌다. 사람에게는 때로는 끈 풀린 ’무위(無爲)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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