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 2월 7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에서 한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 나왔다.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안구 퐁나마을에서 한국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1968년 2월 12일 아침 10시 30분부터 낮 3시 사이, 원고의 가족을 집 밖으로 나오도록 명령하고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와 같은 행위들은 명백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퐁니마을에 살고 있던 응우옌티탄(8)의 집에는 오빠(15), 언니(11), 남동생(6), 이모(32), 사촌 동생(생후 8개월), 동네 오빠(13)가 같이 있었다. 총소리가 가까워졌을 때, 이들은 겁을 먹고 동굴로 숨었다. 미군 폭격에 대비해 파놓은 깊이 1m, 폭 4m의 작은 공간이었다. 집에 들이닥친 한국 군인은 동굴을 발견하고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모는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수류탄을 던지는 시늉에 아이들은 무서움을 견딜 수 없어 나오자 한국 군인이 총을 쏘았다. 오빠는 배와 엉덩이에 총을 맞고 아예 일어서지도 못했다. 응우옌티탄은 왼쪽 옆구리에 총을 맞고 다른 집으로 도망쳤다. 나중에 미군과 남베트남민병대에 발견돼 오빠와 함께 헬리콥터로 후송됐다. 그날 집에 있던 7명 중 5명이 죽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37년, 퐁니마을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지 55년이 지났다. 당시 8살이던 응우옌티탄은 이제 63세가 되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2020년에 국가배상 최소금액인 3000만원에 100원을 더해 소송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여러 사람이 증언을 했다. 그중에 퐁니마을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파병군인 류진성씨는 2021년 11월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중대원들이 민간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중대장이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살해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영화 ‘플래튠’에도 군인들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장애인, 여성, 노인을 죽이는 장면이 있다.
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우리 정부는 곧바로 부정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월 17일 국회 국방위에서 “여러 가지 자료를 확인하고 증인도 확인해봤는데, 우리 장병들에 의한 학살은 전혀 없었다. 파월장병의 명예를 생각해서도 이 부분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엄중히 보고 있을 게 아니라 공식적인 진상 조사를 해야 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지, 혹은 불가피했는지를 밝혀야 한다. 더이상 덮어둘 일이 아니다. 미국 국방부는 1970년대 초에 벌써 베트남 미군의 고의적인 민간인 학살과 잔혹 행위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90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처음에 기밀로 분류됐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2006년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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