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고문헌 [8]청파 이륙이 지은 이야기책 ‘청파극담’
경남의 고문헌 [8]청파 이륙이 지은 이야기책 ‘청파극담’
  • 경남일보
  • 승인 2023.04.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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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지방에서 보고 들은 괴이한 이야기

경남에 많은 관심과 애착 청파이륙
경남과 관련된 인물, 견문 등 수록
인물 이야기…야사로서 가치 높아
◇청파 이륙이 지은 ‘청파극담’

청파(靑坡) 이륙(李陸)은 1438년 4월 16일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으로 자신의 호로 삼았다. 이륙이 경남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1462년 산청 단속사에서 3년간 머물면서 과거 공부에 전념하면서부터다. 틈틈이 지리산을 유람하기도 하고, 진주 촉석루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륙은 3년 뒤 장원으로 과거 급제하여 관찰사와 참판 등을 두루 역임했고, 두 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1498년에 별세하였고, 저서로 ‘청파집’이 전한다. 청파극담이 수록된 ‘청파집’은 산청 단성 백곡마을 우산 한약우 선생이 소장하고 있다가 1995년 후손에 의해 고문헌도서관에 기증된 것이다. 청파집이 진주에서 간행하게 된 배경은 이륙의 장손 이황이 단성현감을 지낸 뒤 하동에 정착했고, 이황의 셋째 손자 월당(月塘) 이용이 하동에서 조동에 입향하여 백형 운당(雲塘) 이염과 함께 남명 문하에서 수학하였기 때문이다. 조동은 지금의 금산면 갈전리·속사리 일대다. 이곳에 공군교육사령부가 들어오면서 고성이씨 문중은 지금은 청곡사 입구에 재실이 짓게 되었다.

이륙의 문집은 1512년에 처음 간행되었으나 누락된 부분이 있었고, 1600년경에도 문집이 간행되었으나 여기에는 청파극담이 실려 있지 않았다. 이노선이 1853년 청파극담을 보완하여 진주에서 목판으로 다시 간행하였다. 청파집 인쇄에 사용된 목판은 고성이씨 월당종중에서 2003년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고문헌도서관 소장 청파집은 바로 이 목판으로 인쇄한 책이다. 청파극담은 이륙의 문집 2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평소 보고 들은 괴이한 이야기 95개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청파집에 수록된 청파극담 경상국립대 고문헌도서관 소장
고성이씨 월당 선영과 영월재
청파집 인쇄에 사용된 목판
◇가면이야기

이륙이 경기도 광주에 사는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가면을 좋아하는 이웃 사람이 나무로 만든 이상한 가면을 발견하고 이를 얼굴에 썼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무당을 불러 굿을 해 보니, 그 이상한 가면이 병을 일으킨다고 알려주었다. 그 가면을 들판에 버렸더니, 과연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몇 달 뒤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그 가면을 발견하였다. 가면은 이미 반쯤 썩고 버섯이 피어 있었다. 버섯을 따서 삶아 먹으니 갑자기 헤죽헤죽 웃다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버섯을 먹고 앞사람과 똑같이 하였다. 버섯을 먹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져 춤을 그만두려고 하여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1994년에 개봉한 짐 캐리 주연의 ‘마스크’라는 영화가 연상된다. 가면에는 웃음을 감염시키는 전염성이 강한 버섯이 자라고 있었고, 가면을 쓴 사람에게 전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같이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 필요한 가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괴이한 이야기만 수록된 것이 아니다. 때로는 교훈적인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하늘이 불효자를 징계한 내용이다.

 
영화 ‘마스크’에 등장하는 나무 가면
◇장군 최윤덕

어떤 촌놈이 성질이 포악하여 성이 나면 자기 어미를 때리곤 했다.

어미가 큰 소리로 하늘에 호소하기를, ‘하느님이여, 어미 때리는 놈을 왜 죽이지 아니합니까’라고 하였다. 그 촌놈이 맑은 대낮에 낫을 허리에 차고 밭에 나가서 이웃집 사람과 같이 보리를 줍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에서 일어나더니 잠깐 사이에 캄캄해지고, 우레가 치고 큰비가 내렸다. 비가 개어 밭에 나가 보니, 그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어 있었다. 번개가 칠 때는 큰 나무 밑이나 쇠붙이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 그 불효자가 들판에서 낫을 들고 있었으니, 벼락을 맞아 죽은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이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하늘이 내린 최고의 벌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 책에는 경남 인물의 일화도 수록되어 있다.

어떤 시골 부인이 최윤덕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기를, ‘호랑이가 저의 남편을 물어 죽였습니다’라고 하니, 말하기를, ‘내가 부인을 위하여 원수를 대신 갚아주겠소’라고 하였다. 호랑이의 자취를 밟아 찾아가서 화살을 쏘아 죽였다. 호랑이의 배를 갈라 남편의 뼈와 살과 사지를 끌어내어 옷에 싸고 관을 준비하여 장사지내 주었다. 그 부인은 감격하여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이에 온 고을 사람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최윤덕을 부모와 같이 사모하였다.

최윤덕은 창원시 북면 내곡리 무릉촌에서 태어난 장수다. 대마도 정벌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고, 북방의 여진족을 정벌하여 몰아낸 인물이다.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자 세종은 기다렸다는 듯이 최윤덕을 우의정에 임명했다. 조선 시대 무인이 재상에 오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 일화를 통해 무장으로서 용맹과 백성을 사랑하는 공직자의 모습을 두루 볼 수 있다.

 
최윤덕 동상


◇하연 부부

정승 하연이 마음이 잘 통하는 정승 남지와 함께 영남을 순찰하게 되었다.

남지에게는 좋아하는 진주 기생이 있었다. 하루는 하연이 장난을 치고 싶었다. 자신이 진주 기생인 것처럼 속여 남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첩이 요즘 태기가 있어 신 것이 먹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날 마침 신 것을 임금에게 진상하고 남은 것이 있었다. 하연이 남지에게 ‘신 것을 진상하고 남은 것이 있는데, 친척 중에 보낼 곳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남지가 말하기를 ‘종고모가 계신다’하거늘, 하연이 남지 몰래 답장과 함께 신 물건을 진주 기생에게 보냈다.

훗날 남지가 진주에 가서 기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기생이 남지에게 지난날 신 물건을 보내준 것에 감사를 드렸다. 남지는 그제서야 하연이 장난을 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하연이 촉석루에 앉아 남지에게 말하기를, ‘우리 고을 산천이 경치 좋기로는 동방에서 으뜸이지 않소’하니, 남지가 ‘경치만 좋은 것이 아니라, 장난치기 좋아하는 관리도 살고 있지요’라고 하였다. 하연은 산청 남사마을에서 태어나, 정몽주의 문인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조선 초기 다사다난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임금의 굳은 신임을 받았다. 평생 조정에서 세종을 보필했으며 안평대군이나 집현전 학사들과 교유하면서 수많은 시문을 남겼다. 세종실록지리지의 모태가 되는 경상도지리지를 편찬하기도 했다. 하연의 장난기 좋아하는 모습과 이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벗과의 우정을 알 수 있는 일화다.

 
하연 부부 초상 무주 백산서원 소장
산청 남사예담촌 하씨고가에 있는 하연이 어릴 때 어머니에게 홍시를 드리기 위해 심은 감나무
◇가치가 우수한 야사이야기

허성이 조선 시대 관리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 판서로 있을 때 늘 말하기를, ‘지위와 재물을 탐내면 늙어서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허성이 삼년상을 마치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 곧바로 거울을 던지면서, ‘내가 이렇게 추하게 늙은 줄 몰랐구나’라고 말하고, 사직하고 더 이상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이조 판서 허성은 남의 청탁을 미워하여, 동쪽을 원하는 청탁이 있으면 서쪽으로 보내고, 서쪽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동쪽으로 보내서, 반드시 그 청탁자의 뜻과 반대로 한 인물이다.

예조에서 각 절의 주지 후보를 복수로 추천하면, 이조에서 임명하게 되어 있었다. 흥덕사 중 일운(一雲)이 단속사 주지로 가고 싶어 허성에게 부탁을 하려고 하였지만, 들어줄 리가 없었다. 일운이 이조 판서를 찾아갔다. ‘듣자 하니, 평양 영명사는 절도 좋거니와 경치도 아름다워 우리나라 최고의 사찰로 꼽히니, 주지로 가서 머물고 싶습니다. 그런데 만약 잘못되어 단속사 같은 곳으로 가서 주지를 한다면 큰 고통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물러갔다. 그런데 며칠 후, 일운에게 단속사 주지를 명하는 통첩이 전달되었다. 이에 일운은 크게 웃으며, ‘저 늙은 이조 판서가 내 술책에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구먼’ 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청파극담에는 이륙이 궁중에서 목격한 고관대작의 일화, 지방 관찰사로 근무하면서 각 지방에서 보고 들은 괴이한 이야기 등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다. 특히 이륙은 단속사에 머무르면서 과거 공부를 하였고, 지리산을 등반하는 등 경남지역에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졌던 인물이다. 이륙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 사귄 진주 기생 승모란(勝牡丹) 이야기, 호정 하륜의 일화 등 경남과 관련된 인물, 견문 등을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왕조실록이나 개인의 문집 등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경남의 역사와 인물을 세세히 알 수 있는 기록문화유산이다. 유명 인물 관련 이야기가 많아 야사로서의 가치도 높다. 고문헌에서 이러한 자료를 많이 발굴해 대중화해야 경남의 문화자산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이정희 경상국립대 고문헌도서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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