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롭다
[경일시론]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롭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4.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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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달걀을 살 때 상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그 달걀을 깨뜨려 보지는 않는다. 슈퍼마켓 주인이 상한 달걀을 팔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믿음과 신용은 시장질서의 기초다.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이 물건을 파는 사람이 속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믿음과 신용을 바탕으로 한 시장질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생적으로 진화해온 결과다. 수많은 거래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착취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상대방도 그만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착취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됨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행동규칙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그 행동규칙을 따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기대하에서 자발적으로 교환이 이뤄진다.

시장경제에서는 교환을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각 그들의 잉여를 누릴 수 있고, 교환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익을 보기 때문에 교환이 많을수록 이익 보는 사람이 많아지며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가한다. 교환 활동이 활발할수록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다. 이것은 믿음과 신뢰가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인이고 국가 흥망성쇠의 열쇠임을 시사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행동 규칙은 인간 세상의 근본 문제인 자원의 희소성에서 나왔다. 인간의 욕망에 비해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놔둘 경우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희소한 자원에 재산권이 생기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돼 자연이 제한하는 재화의 공급이 확대됨으로써 사람들이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고, 재화 부족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갈등 문제도 완화된다. 이것은 재산권이 잘 보장되지 않는 저개발국가와 사회주의국가에서 재화의 결핍과 이를 둘러싼 갈등이 훨씬 더 심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재산권은 희소한 자원의 효율적 사용을 촉진하고 사회 정의와 안정을 위해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이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 규칙이 생겨났다.

국가는 사람들이 행동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는 법을 정하고, 그것을 수행할 책무가 있다. 그 책무를 책임지고 집행하는 기관이 정부다. 그래서 시장 질서의 기초가 되는 믿음과 신용을 해치는 사기, 횡령, ‘거짓말 범죄’등을 엄격히 처벌하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신뢰와 믿음을 주고 솔선수범해야 할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은 정부의 거짓말 결정판이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언제 폐쇄할 것이냐’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조기 폐쇄했고, 대통령의 말에 맞추기 위해 청와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력원자력 등이 연계해 조직적으로 왜곡했다고 한다. 감사원의 현장 감사 바로 전날 밤에는 증거 파일 444개를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정부의 법무부장관을 지낸분 중 한분은 ‘사모펀드 의혹’, 한분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과 관련해 ‘거짓말 해명’에 휩싸여 있다. 라임과 옵티머스 펀드의 사기를 비롯해 최근 ‘거짓말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사기, 무고, 위증 등 3대 거짓말 범죄가 계속 늘어 지난해 총 48만 여건으로 역대 최다였다는 보도도 있다.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부 지도자들의 거짓말 형태가 사회를 좀먹고, 국민들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의 기초인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 국가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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