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을묘사직소의 여운
[기고]을묘사직소의 여운
  • 경남일보
  • 승인 2023.05.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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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순 지리산 청강원 원장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남명 조식의 ‘을묘사직소’(뜻있는 도서출판)를 읽었다.

상소 한 편이 오백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서였다.

‘을묘사직소’는 1555년 명종 11년 척족 세력들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많은 유학자를 죽이고 백성들은 논밭을 빼앗긴 채 유랑하고 걸식하는 어지러운 시대에 나타난 남명 조식의 상소다.

당시 조정에서 조식에게 단성현감을 제수하자, 조식은 곧바로 단성현감을 사직하는 ‘을묘사직소’를 올려 당시의 정치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벼슬을 사양하는 일도 임금의 눈 밖에 나는 일인데 조식은 여기서 나아가 당대의 국정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대궐 안 벼슬아치들의 권력 투쟁과 각 고을에 나가 있는 수령들의 포악질이 극에 달했다는 직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조식은 이어 명종을 임금의 책무를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라고 하고 대왕대비(문정왕후)는 문이 겹겹이 달린 궁궐에서만 살아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그러고는 반드시 정심으로 백성을 새롭게 하라는 부탁을 남긴다.

조선을 통틀어 조식 선생의 이전에도 그의 사후에도 이처럼 임금과 조정을 향해 차고 강직한 문장의 상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 모두가 을묘사직소를 한 번은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지리산에 깃들어 산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리산을 상징하는 인물 중 최고봉에 서 계신 남명 조식 선생의 ‘을묘사직소’를 읽고 난 후 지리산이 새롭게 다가왔다. 상소 한 편을 번역한 책이지만 그 여운과 울림이 지리산 둘레를 돌며 쩡쩡 울리고 그 기개가 공중에 서려 있는 것만 같았다.

젊은 나이에 지리산에 들어와 연화봉 등줄기에 수만 평에 이르는 지리산 청강원을 가꾸며 우리 몸의 자연 치유를 일깨우는 약초차 재배에 일생을 바쳤다. 어쩌면 백성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걱정했던 조식 선생의 경의·실천 사상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테다.

지리산은 오늘도 많은 생명을 품고 기르며 우뚝 솟아 있다. 명산은 명인을 낳는다. 세계와 국가, 시민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이때, 우리의 앞길을 선명하게 가리킬 강직한 선비의 목소리가 그립다.

윤경순 지리산 청강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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