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간과 학교 폭력
[기고]공간과 학교 폭력
  • 경남일보
  • 승인 2023.05.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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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경남교육청 부교육감
박성수(경남교육청 부교육감)


모든 아이를 위한 학교는 사회발전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학교는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듯이 대량 교육을 위해 대규모 학교, 과밀학급, 그리고 엄격한 규율이 강제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외형상으로는 감옥과 차이가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공간도 좁고,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기회도 적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학업성적으로 비교하고 자존감을 훼손하는 물리적, 심리적으로 열악한 것이 우리의 교육환경입니다.

좁은 공간이라는 물리적 환경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준 것입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학교용지가 책정됩니다. 100미터 달리기는 속칭 ‘라떼시대’의 전설일 정도로 귀퉁이 좁은 땅을 학교용지로 선심 쓰듯 배정합니다. 교실에는 여유 공간이 없습니다. 30여 개의 책걸상이 들어가는 빼곡한 공간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너무도 많은 시간을 밀집된 공간에서 보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규격의 축구장도 찾기 어렵습니다. 경제성에 충실한 기성세대의 부끄러운 배려입니다.

심리적 환경도 열악합니다. 공부를 못하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소외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때문에 학교에 있는 시간에 비례에서 무시당한다는 심적 분노는 쌓여만 갑니다. 꿈도 없습니다. 공부 외에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분노들이 폭력으로 발산됩니다.

좁은 공간, 꼿꼿한 자세, 통제와 획일성의 강조, 성적지상주의, 자존감의 상실, 재미없는 학습에서 아이들이 행복감을 느끼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또래 집단의 강한 유대는 큰 위안이지만 그 부작용으로 왕따나 집단 공격이 발생합니다. 학폭 가해자는 많은 경우 장난이었다고 합니다. 놀고 싶고 장난하고 싶은 욕구가 많다는 것이고 이게 잘못 발현된 것이 폭력이 됩니다. 경쟁의 압력을 약자에게 표출하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은 학교제도의 퇴행적인 현상입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거론된 때부터 예체능의 중요성이 논의되었습니다. 일찍이 공교육의 선진국은 스포츠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스포츠 활동을 민주적 리더십과 사회적 규범을 배우는 좋은 기회로 봅니다. 민주시민교육의 실천이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역주민들의 강한 지지로 스포츠에 많은 예산을 투자합니다. 명문 학교일수록 스포츠 활동을 더 많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필자가 직무연수를 했던 미 동부 소도시의 고등학교는 60개의 스포츠팀과 80명의 코치를 두고 있습니다. 미식축구장, 테니스장, 축구장, 핸드볼장, 수영장 등의 엄청난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방과 후에 두 시간 정도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합니다. 스포츠가 학교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규칙을 지키는 법, 정정당당한 경쟁, 팀워크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셈입니다. 각각의 스포츠는 규칙과 규정이 있고 이를 지켜야 하는 스포츠맨십이 있습니다. 특히 단체경기 종목은 저마다 맡은 포지션의 역할과 소통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키며 사회적 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의 경우는 사회적 관심, 시설투자, 재정 지원 등 모두 암담합니다. 공간이 좁으니 스포츠 활동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다양한 특기적성활동도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 학교제도의 퇴행적 현상인 학교 폭력은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 준 쓰디쓴 선물입니다.

공부만 하는 학교, 그리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내팽개치는 학교가 기성세대가 원하는 학교는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스포츠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특기적성활동이 가능한 여유로운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무입니다. 우리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선물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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