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TV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볼거리가 많아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채널만 많아졌지 여기나 저기나 맨날 같은 이야기’라는 사람도 있다. 드라마는 사랑과 배신, 불륜에 출생의 비밀, 복수 이야기로 뻔하다면서도 인기 작가가 쓴 드라마가 또 높은 시청률을 차지한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것이 이런 건가 보다.
그런데 같은 상황을 두고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사가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 ‘여성이 남성의 따귀를 사정없이 때리고, 따귀를 맞은 남성은 그대로 맞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웃기고 있네’ 하는 불편함이 올라온다. 우리 현실이 정말 그러한가?
이전 드라마에서 부부가 의견이 다를 경우, 서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며 결국엔 하나의 결과를 도출할 때까지 평화롭게 대화하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남편이 “그만해”라고 말하는데 아내가 자기주장을 하면 남편이 다시 “그만해”라며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내가 자기주장을 이어가면 “그만 하라니까!”라는 대사가 두어 번 이어지고, 아내가 굽히지 않고 자기 말을 하면 여지없이 남편이 아내의 따귀를 때렸다. 아내의 뺨을 때린 남편의 대사는 “그 봐 그만하라고 했지?”라며 ‘네가 맞은 것은 네 잘못’이라는 아내 탓으로 그 장면은 마무리되었다.
요즘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언성을 높이며 남성을 때리고 남성은 아무 저항 없이 ‘뭐 하는 짓이야?’ 하며 째려본다. 이런 장면을 보는 시청자가 여성의 폭력에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는가? 남성이 이렇게 하면 맞으니까 이럴 땐 억울해도 가만있어야지 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도록 남성을 학습하는가? 이런 일에 공감될 이유도 없고 일어났어도 안 되는 일이다. 폭력은 성별을 떠나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지 피·가해자가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최근 드라마에서 임신한 여성이 산부인과를 찾아가 낙태를 하거나, 낙태를 결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전 방송에서는 임신한 인물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반드시 출산을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출산한 아이를 버리더라도, 죽더라도 무조건 낙태 장면은 없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후 가능해졌다. 낙태를 이유로 국가가 법적 처벌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낙태나 출산을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문제지, 낙태를 찬성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똑같은 한국말이 왜 누군가에게는 ‘낙태를 찬성한다’로 들릴까?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 나는 찬성할 권리도 반대할 권리도 없다. 내 말을 들을 이유도 없다.
이처럼 같은 문제를 두고 우리는 참 다르게 해석한다. 언제쯤 색안경을 벗고 같은 하늘, 같은 해를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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