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
[공연 리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
  • 백지영
  • 승인 2023.05.15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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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이 뮤지컬 무대로…봄밤 정취 ‘물씬’

구명조끼 입고 앉은 수상객석
진주성 의암 바위 무대 ‘운치’
투신 장면 등 실경 장점 살려
“야외 공연이라 생동감 넘쳐”

지난 11일 오후 7시 50분께 진주교 아래 남강 둔치. 설렌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둘 주홍빛 구명조끼를 착용했다. 극단 현장의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를 보기 위해 현장을 찾은 관객들이다.

객석이 여느 공연과 달리 남강 위로 마련된 까닭에, 유람선 관광에서나 볼 법한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유등 축제 기간이면 남강 위를 가로지르는 부교처럼 물 위로 둥둥 떠 있는 수상 객석에 입장하자 공연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진주성벽 아래 의암 바위 일원은 푸르스름한 조명에 요요히 빛나며 그 운치를 더했다.

공연은 조선시대 야담집 어우야담에 기록된 ‘진주 관기 논개가 일왜(一倭)를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는 구절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완만한 경사의 바위 무대로 선명한 분홍빛 치맛자락의 논개와 진주성민들이 등장한다. 여유롭게 씨름을 하고 안부를 나누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기도 잠시, 진주성으로 왜군이 진격한다. 바위 무대 위 속속 피어오른 횃불을 배경으로 의병들은 항전을 다짐한다.

전투를 준비하며 경사진 바위 이곳저곳을 평지인 양 잽싸게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동선 연습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가 짐작됐다.

마침내 시작된 전투. 격전을 표현하듯 바위 무대 곳곳에서 시차를 두고 터지는 폭죽에 놀라기도 잠시,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에 어떻게 합을 맞췄을지 감탄이 터져 나왔다.

논개와 의병장의 독창 등 노래 장면에서는 현대·서양 배경의 뮤지컬 곡에서는 접할 수 없는 한국적인 분위기가 부분 부분 느껴졌다.

공연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한 점도 눈에 띄었다. 전투에 승리한 일본군이 진주성 내 아낙네들이 뿌린 뜨거운 물에 맞아 호들갑을 떨며 도망가자 객석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웃음도 잠시, 논개가 포로 생환을 조건으로 왜군에게 춤을 선보이러 떠나려 하자 함께 항전했던 여인들이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옥가락지를 선물하며 작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 12일 진주성 의암바위 일원에서 열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논개가 왜적을 끌어안고 투신하고 있다. 사진=극단 현장


논개가 왜군 수장을 끌어안고 의암에서 남강으로 투신하는 ‘백미’를 뒤로 한 마지막 장면. 한복이나 왜군복을 갖춰 입은 출연진과 달리, 무대 양 가장자리에 선 합창단은 현대 복장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눈에 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선조들을 불러낸 뒤 위로 노래를 선물한다는 의미를 담은 의도적인 연출이다.

역사의 현장을 배경으로 탁 트인 공간에 앉아 강물 소리, 밤바람을 벗 삼아 감상한 공연은 봄밤의 풍취를 만끽하기에 제격이었다.

잘 알려진 이야기인 만큼 굵직한 줄거리는 예상되는 작품이었지만, 실경 무대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특수 효과와 100여 명에 달하는 출연진이 빼곡하게 채워낸 장면 덕에 마지막까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지난 12일 진주성 의암바위 일원에서 열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극단 현장
지난 12일 진주성 의암바위 일원에서 열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극단 현장

관객들 역시 호평을 쏟아냈다.

남편·자녀와 함께 공연을 찾은 전주희(30·진주)씨는 “아이 교육 차원에서 공연을 예매했는데 정말 유익했다”며 “7살 아들이 (사람들 죽는 장면에서) 무섭기도 했지만 감동적이고 슬펐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이동근(75·진주)씨는 “오늘 우연히 공연 사실을 알게 돼 방문했는데 감동적이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 뒤 “좋은 공연인데 주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게 아쉽다. 나 혼자 볼 순 없으니 내일 가족과 함께 다시 보러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출장차 진주를 찾았다가 동료들과 공연을 감상한 김우정(35·인천)씨도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어제 진주성에 왔다가 우연히 리허설을 보고 급하게 예매했다”며 “일반 뮤지컬과 달리 실제 배경에서 하다 보니 생동감이 넘쳤다. 야외 공연이라 소리가 작을까 걱정했는데 음향부터 조명까지 완벽했다”고 했다.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는 올해 총 9회 공연을 예정했으나, 논개제 기간 중 선보일 예정이었던 5~7일 공연이 폭우와 그에 따른 남강댐 방류로 취소되면서 이날 공연이 남은 6회 중 첫 공연 무대였다.

고능석 연출은 “우천으로 공연이 취소되며 상실감이 컸지만, 남은 공연 동안 투신 장면이나 경사 무대를 활용한 구도 등 실경 공연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네이버 예매자 리뷰란 평점이 5점 만점에 4.9점으로 좋다”며 “공연을 재밌게 감상한 분이라면, 타지 지인들에게도 알려 전국 많은 분이 볼 수 있도록 소문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와 진주성민의 항전을 다룬 공연이다.

2006년 초연을 시작으로 논개제 기간마다 선보여 온 장수 작품이다. 역사의 장소인 의암 바위 일대에서 펼쳐지는 ‘실경(실제 경치) 역사’ 공연이라는 점은 16년째 변함없지만, 매년 수정·보완을 거쳐 지난해부터는 연극에서 뮤지컬로 형식의 변화를 꾀했다.

올해부터는 진주 대표 야간 관광 콘텐츠를 목표로, 공연을 논개제 기간 3회로 국한해 선보이는 대신 5월과 8월 각 3회 추가해 총 9차례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이외에도 객석 규모 확대, 유료화(관람료 1만원)와 함께 안무 등을 보완해 완성도를 더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지난 12일 진주성 의암바위 일원에서 열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극단 현장
 
지난 12일 진주성 의암바위 일원에서 열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극단 현장
지난 12일 진주성 의암바위 일원에서 열린 실경 역사 뮤지컬 ‘의기 논개’에서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극단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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