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확대경] 국립진주박물관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展
[전시확대경] 국립진주박물관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展
  • 백지영
  • 승인 2023.05.17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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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백정에 비춰보는 오늘날의 이야기

국사 편찬위 자료 등 새롭게 소개
울분 가득 백정 정서 엿볼 수 있어
외노자 등 현시대 차별 생각게 해
국립진주박물관이 지난 13일부터 선보이는 특별전 ‘공평과 애정의 연대, 형평운동’은 형평사 창립을 둘러싼 전후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인권 문제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전시다.

사회에서 배척받았던 소수자와 그들에게 손을 건넨 연대의 움직임 등을 통해 현재 세대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어떠한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전시의 주축이 되는 것은 100년 전 차별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투쟁했던 백정과 이들에게 손을 내민 운동가들의 이야기지만, 이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차별의 대상이 된 이들을 생각게 한다. 전시에서 마주한 백정은 관람객 시각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우리 곁의 어떤 이들로도 치환된다.

4부로 구성된 전시 흐름에 맞춰 눈여겨봐야 할 요소들을 소개한다.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 소장=단성향교


◇1부 ‘조선·대한제국기 백정의 사회적 지위와 삶’=전시는 형평 운동이 일어나기 전 조선과 대한제국기 백정의 삶으로부터 시작한다.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화척으로 불리던 이들로, 유목과 수렵 생활을 한 거란인·여진인에 유래한다. 천민 대우를 받은 이들은 거처 없이 떠돌며 사냥을 하거나 버드나무로 유기(柳器)를 만들어 팔며 생활을 이어 나갔다. 조선 세종이 이들에게 농사를 짓고 정착하도록 하지만 이들은 농민처럼 농사에 종사하지 못했고 일반 농민과 달리 사회 최하층민의 차별을 받았다.

1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은 조선 후기 백정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사료다. 호적대장은 조선시대 국가가 백성을 파악해 각종 역(役)을 부과하기 위해 만든 자료로, 양반뿐만 아니라 백정과 노비 등 하층민의 생활상도 담겨 있다. 호적대장 속 백정은 가죽을 다루는 장인인 피장, 버드나무 그릇을 만드는 유기장 등 역을 담당했다. 백정은 노비와 달리 성을 사용하고 부부 관계를 맺는 등 안정적인 가계를 유지했지만, 조부·외조부·증조부 등 조상을 모두 아는 경우는 드물었다.

전시에서는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 속 백정인 유기장 손삼선과 그의 처인 사비 종분에 대한 정보가 기재된 면을 펼쳐 별도로 표시했다. 호적 대장을 읽는 법과 한글 번역문 등도 병기했다.

 
‘반형평운동’에 대한 형평사의 입장. 소장=국사편찬위


◇2부 ‘형평운동과 1920∼1930년대 백정의 인권’=형평사 창립 전후 백정의 실제 삶을 소개하는 순서로 다양한 문서·포스터·사진 등을 이용해 형평운동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그간 일부 학자들만 알고 있던 형평 관련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소개하는 등 그간 볼 수 없었던 사료를 소개하는 데 신경 썼다. 주민 수천 명이 경북 예천형평분사를 습격하고 형평사 간부들을 구타한 ‘반형평운동’과 관련해 당시 형평사가 냈던 입장문도 그중 하나다.

“우리 예천 사원은 폭도들로 말미암아 가산 집물을 모두 다 약탈당하고 부모 처자가 이쪽저쪽으로 흩어져 불쌍한 상태에 있을 뿐이 아니라, 그자들은 장차 우리 40만 대중을 모욕하고 죽이며 ‘형평’ 두 글자를 없애라고 하는데, 어찌 우리가 그대로 있겠습니까.”(국사편찬위 ‘검찰사무에 관한 기록’ 中)

전시에서는 대중이 접하기 힘들었던 백정 관련 연구 자료를 정보 그림(인포그래픽)으로 풀어 소개한다. 연도별 형평사·형평사원 수, 형평사 창립 이후 나타난 반형평 사건, 1923~1927년 조선형평사총본부에 보고된 차별사건 분류 등을 보기 쉽게 정리했다.

벽 한 쪽을 할애해 소개한 당시 언론 보도는 백정의 가슴 속에 들끓고 있던 애환을 짐작게 한다.

“백정 사회에서는 반만년 장구한 사이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으리오.(…) 이것을 깨달은 진주의 강상호·신현수·천석구 삼씨가 어느 날 그 촌락을 방문하고 계급 타파의 시급함을 이야기한바(…) ‘우리의 앞길은 버렸으나 우리의 후손이라도 문명의 길에 나아가게 하여 주시오’ 하며(…) 한편으로는 환희하며 한편으로는 슬퍼하는 모양이 나타나더라.”(1923년 4월 30일 조선일보)



 
강상호 장례식 사용 촛대. 소장=국립진주박물관.


◇3부 ‘광복 이후 되살아나는 형평운동의 기억:문학 및 학술, 인권운동’=형평운동을 조명하려는 노력을 소개한 3부 공간에 들어서면 새빨간 천을 배경으로 조명을 받고 빛나는 촛대가 눈에 띈다. 양반의 신분으로 형평운동에 헌신했던 강상호 선생의 장례식장에서 사용했던 촛대다. 그 곁에 큼지막이 자리 잡은 강상호 추도문은 전시를 기획한 이효종 학예연구사가 전시의 백미로 꼽는 부분이다. 백정 출신들의 울분과 강상호에 대한 존경이 여실히 담겨 있어, 당시 백정들의 정서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백정이란 계급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온 인간으로서(…) 소위 양반 계급층에 짓밟혀 아우성 소리를 지르면서 신음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오직 선생님만은 그 시대의 속칭 양반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신분 명예를 포기하고 심지어 자기의 전 재산을 희사해 가면서 우리들의 고독한 사회적 지위의 인권 해방, 계급 타파를 위해 (…) 밤낮으로 고심하시지 않으셨습니까?”(1957년 11월 형평사원 이복수)

이와 함께 형평 연구에 매진했던 김중섭의 기록과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20년 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했던 형평운동 80주년 기념행사 전시물, 형평을 다룬 문학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형평사 주지 전문을 배경으로 배치된 최수환의 설치 미술 작품.


◇4부 ‘형평운동의 유산과 계승:인권과 연대의 합창’=예술로 재탄생한 형평운동을 소개하는 4부는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작품들로 기획전시실에서 가장 화려한 순서다.

소효영과 이곤정의 서예, 박건우의 회화, 주정이의 판화, 최수환의 설치 미술, 극단 현장의 연극 촬영본 등 형평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다채롭다.

이들 작품과 함께 4부 공간 한쪽으로는 큼지막한 글씨가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글과 한문이 뒤섞여 가독성이 떨어지는 형평사 창립 취지문, ‘형평사 주지’ 전문을 현대 한글 맞춤법에 맞춰 번역해 배치한 것이다. 전시를 관람한 이들이 형평사 주지는 꼭 한번 읽고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며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해 우리도 참사람이 되기를 바람이 본사의 주지니라.”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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