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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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3.05.1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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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김만중문학상 받은 김유섭의 통절한 시 해석(3)
지금까지 김유섭이 이상의 ‘오감도’, 김소월의 ‘진달래’, ‘초혼’까지를 재해석한 부분을 진땀나는 마음으로 확인해 왔다. 오늘은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수영의 ‘풀’에 대해 논의한 부분을 요약하고자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사랑시가 아니라고 치고 나간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흰 당나귀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그런데 왜 흰 당나귀라 했을까? 조선민족을 구하기 위해 지도자를 태우고 올 백마를 상징하는 것이 흰 당나귀다. 그러나 당나귀일 뿐이다. 희망이 없다. 나타샤라는 이름도 우리말 금지에서 드러나는 불편한 이름이다. 그래서 김유섭은 이상이나 이육사와는 달리 백석이 일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아닌, 소극적 저항인 피해가기를 선택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산골로 형벌의 밤을 피해 가자는 것이다. 노비들(피압박 민족)이 사는 오두막으로 간다는 것이리라.

이어 김수영의 ‘풀’을 보자.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전체 3연중 1연) 이 시를 문맥 모순을 피하고 순리대로 읽어가기 위해 시대적 사건을 떠올려 풀은 ‘민주주의’를, 동풍은 ‘3선개헌’을 넣어 읽어보길 권한다. 그렇게 읽어보자.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3선개헌에 나부껴/ 민주주의는 병들어 눕고/ 드디어 울었다/ 현실이 희망이 없어서 더 울다가/ 다시 병들어 누웠다//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3선개헌보다도 더 빨리 병들어 눕는다/ 3선개헌보다 더 빨리 을고/ 3선개헌보다 먼저 일어난다// 현실이 희망이 없고 민주주의가 병들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3선개헌보다 늦게 누워도/ 3선개헌보다 먼저 일어나고/ 3선개헌보다 늦게 울어도/ 3선개헌보다 먼저 웃는다/ 현실이 희망이 없고 민주주의 근본이 병들어 눕는다”

김유섭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알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복종’에 대해서도 각각 ‘님=왕’, ‘왕의 주권을 잃어버린 망연자실 속에서도 주권회복을 열망하는 흔들림 없는 결연함’, ‘왕에 충성하는 유교정신의 도리’, ‘불사이군의 세계관’ 등을 보인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니까 시의 주제는 하나의 연작처럼 왕과 왕권에 집중된다고 보았다.

한용운의 시적 주제를 독자들은 왕, 국가 등으로 끌고가는 일이 답답한 일이긴 해도 그것을 ‘창작적 의도’라고 볼 때 의도의 단순성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 감상(맛보기)에 상충하는 것이 시인의 창작적 속내라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라 하겠다.

필자는 이쯤에서 독자가 누리는 맛보기(감상)의 즐거움에 대해 ‘시 맛보기 이론’으로 정리해 놓은 바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시는 언어의 유기체라는 것, 그래서 구성 요소들을 분절시켜 이해해서는 안되고 작품의 한 덩이로서의 맛이나 느낌에 충실하는 것이 옳다는 것임을 강조했다. 학습자(독자)의 주권이 있다는 것, 자기 중심의 총체적 접근이 중요함을 내세운 것이다. 지나치게 시 읽기 전에 잡다한 정보나 참고서 일변도의 해설에 치우치지 말고 문맥이 지시하는 것, 정서적 감응에 따라 교감의 흐름을 잡는 일이 필수적 기초라는 점에 유의하라는 지침이었다.

말하자면 독자는 독자의 권리로 자기 몫, 자기의 정서를 지키고 키우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고 연구가는 연구의 영역에서 전문 이론을 개발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김유섭 시인처럼 창작자의 기본인 변할 수 없는 창작 의도를 캐는 사람은 시를 풀다가 논리의 모순을 적당히 접고 넘어가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해석의 오류가 있을까 지나치게 무류성(無謬性)에 급급할 필요는 없다. 오류자체도 시 감상의 한 개별적 수용일 수 있기 때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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