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어처구니(雜像) 있는 정치
[경일포럼]어처구니(雜像) 있는 정치
  • 경남일보
  • 승인 2023.05.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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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윤창술 경상국립대 교수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 황당하다 그런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문장에서 ‘어처구니’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모르는 이가 더 많을 것이다. 어처구니란 한옥에 올리는 ‘잡상(雜像)’도 의미한다. 잡상(雜像·어처구니)이란 귀신을 쫓고 건물의 위엄을 표시하기 위해 한옥의 용마루끝과 처마끝에 올리는 작은 흙 인형을 일컫는다. 사람 문양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동물 문양도 아닌 생김새라서 잡상이라고 일컫는 것 같다. 이러한 잡상(어처구니)이 많을수록 건물의 품격이 높은 것이라고 한다.

각종 정책에 있어서 엇박자의 형용모순(形容矛盾)은 곤란하다.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다면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과 반도체 등 첨단분야 인재 양성 명분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지켜온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푼 것 등이 그 사례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엇박자의 형용모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사례들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 초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그런 징후가 나타난다. 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가 39.1%, 부정 평가가 55.5%로 각각 나타났다. 국정 운영에 대해 긍정 평가 이유로 외교정책이라는 답이 28.7%로 가장 많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도 외교정책이 33.2%로 가장 많이 거론됐다. 양 진영은 ‘실리외교다, 굴욕외교다’라고 상반된 평가를 하면서 서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의 행위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공격하는 상황으로, 이러한 현상은 가파른 진영 대결로 인한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외교정책의 특성상 그 효과를 평가하기는 이르기도 하지만, 그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드러난 여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결국 선택의 문제이며 결정권자가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런데 다가올 선거 등에서 그 책임을 부담하지 않으려 하니 온갖 핑계를 대면서 상대방이나 주변 탓만 한다. 이는 일종의 비토크라시(Vetocracy)로서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의 산물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이러한 ‘거부 민주주의’ 분위기는 당연히 줄여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절실한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편과 관련하여 반가운 소식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내년 총선에 앞서 새로운 정당(제3정당)이 등장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일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윤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5.4%가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고 했고, “필요하지 않다”라는 응답은 41.0%였다. 현재 거대 양당 구도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다. 대통령의 낮은 국정 운영 지지율에도 야당이 반사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제3정당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어느 진영의 생각이 더 어처구니가 없었는지는 역사가 판단해 줄 거라고 본다. 설사 다른 것은 다른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해 더 관용적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차원에서 정책 결정의 ‘과정’ 또한 중요하므로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소통과 협치로 합리적인 합의선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섣부른 정책발표와 후퇴, 갈등이 반복되는 현상을 줄여야 한다. 국회 또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비토크라시 분위기를 줄여나가야 한다. 어처구니(잡상)를 곳곳에 올려놓으면 좀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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