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637)
  • 경남일보
  • 승인 2023.05.2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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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조선조 여항문학의 중심 유희경과 이매창(1)
금년 2월 조선시대 여항문학의 중심이었던 유희경(1545-1636)의 ‘국역 촌은집(村隱集)’이 알음으로 손에 들어왔다. ‘촌은 유희경기념사업회’가 소설가이자 한문학자 임종욱의 국역으로 출판해낸 문집 ‘촌은집’은 남해 용문사에 보관되어온 목판 ‘촌음집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에 의한 것이었다. 필자는 경남문화재임에 유의하여 촌은의 문학과 관계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촌은집 목판은 조선 중기의 예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유희경의 시집인 ‘촌은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판목이다. 유희경은 서경덕의 문인이었던 남연경에게 ‘문공가례(文公家禮)’를 배워 상례에 밝아 국상은 물론 평민의 장례까지 해박했다. 또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관군을 돕기도 하였다.

‘촌은집’은 그의 시문집으로 시, 창(唱), 전기(傳記)와 한문학의 문제 가운데 하나인 묘표, 묘지명 등을 수록하였으며 3권 2책으로 판각된 책판 수량은 52매이다. 유희경의 손자인 유자옥이 편집 정리하고 김창협이 서문을 붙였으며 증손자 유태웅이 호남만호로 있을 때 용문사에서 다시금 발간한 책판이다. 이것이 유희경과 경남의 인연인 셈이다.

유희경은 1545년 문종1년 한양 대묘동(현 종로구 훈정동)에서 태어나 원서동에서 살았다.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에게서 당시(唐詩)를 배웠다. 그는 41세때 부안읍에 놀러갔다가 본명이 향금인 매창(梅窓)과 풍류로 더불어 즐겼다. 5년간이었다. 이 매창은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부안기생이었다. 촌은집에는 매창에 대한 시 10여편이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계랑에게>

“내게는 선약이 한 알 있으니/ 고운 얼굴에 찡그린 흔적을 고칠 수 있네/ 비단 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했다가/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구나”

과연 부안3절(촌은, 매창, 직소폭포)이라 할 만큼의 여인이었던지 촌은 유희경은 신선이 만든 불사약(선약)을 고이 간직했다가 영원히 늙지 않는 선약을 님(계량)에게 바치고 싶다는 것이다. 호가 매창이고 이름은 계랑, 계생이다.

-<계랑을 생각하면서>

“그대의 집은 낭주(부안)에 있고/ 내 집은 한양에 있다네/ 서로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니/ 오동잎 떨어지는 빗소리에 애만 끊기는구나”

사랑하는 님과의 천리 거리감을 애달프게 한다. 그런데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가 그 거리를 채우고 있어 보인다. 낭주에서 한양의 천리가 어쩌면 연모의 천리가 되는 듯하다.

서로가 만나는 과정에 대해 노래한 시편이 은은한 시정이지만 지극한 간절함이다.

-<계랑에게 주노라>

“일찍이 남쪽 땅에서 떨친 그대 이름을 들었더니/ 시운이며 가사가 낙성(한양)까지 울려 퍼졌네/ 오늘 서로 참모습을 보았으니/ 선녀가 삼청(하늘)에서 내려왔나 의심하노라”

만나기 전에 시를 읽고 감동을 받은 바가 컸음을 고백하는 시편이다. 황진이는 하자 없이 자태로 이름을 먼저 얻었지만 매창은 시 작품으로 이름을 먼저 얻은 듯이 보인다. 그러니까 영혼적인 만남을 이룬 뒤에 실제 낭주에서 사랑을 이룬 것, 약 5년간 같은 자리의 누리기가 성사된 것일 터이다. 헤어진 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길을 가다 계랑을 생각하며>

“한 번 님과 헤어지니 아득히 멀어져서/ 나그네 심사가 발길마다 어지럽구나/ 청조(使者)도 날아오지 않아 소식조차 끊겼으니/ 벽오동에 찬비 날리는 소리 견딜 수 없어라”

님과 헤어진 뒤의 외로움을 발길마다 어지럽다고 표현한다. 인편이든 쪽지이든 한 소절 소식을 모르니 그 적막이 아득하다는 것이다. 아, 벽오동을 보아라. 그 둥지와 가지에 비바람 치고 치는 소리 싸늘한 것일 뿐이로다. 천하의 대문장가도 여인의 허리에 치는 바람소리를 듣지 못하고 보이는 자리 벽오동만이 애석하다는 것 아닌가. 필자는 저 촌은을 불러다 아침마다 들이키는 카페 라떼 한 잔 ‘더 착한 커피’에서 나누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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