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슬레이트 지붕 철거 무상으로 해줘야 한다
[경일시론]슬레이트 지붕 철거 무상으로 해줘야 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3.05.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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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모 논설위원
정재모 논설위원


올해 초 퇴직한 A씨는 최근 부모님이 남긴 시골 빈집을 고치기로 했다. 딱히 귀농 결심은 아니지만 노년의 시간을 다소나마 보내고 싶은 공간인 거다. 그는 우선 쓸모가 적을 아래채를 허물 생각이었다. 오륙 평짜리 이동식 건물을 갖다 앉혀 생활시설을 갖출 심산이었던 것. 그러나 그 계획은 이내 틀어졌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에 발목이 잡힌 거다.

슬레이트 철거는 당국의 허가와 관리하에 하도록 돼 있다. 작업은 지정 전문업체만이 할 수 있다. 15%가량 포함된 석면(石綿)이 1급 발암물질인 까닭이다. 호흡기가 석면에 노출되면 폐암에 치명적이란다. 피부에 닿아도 다른 질병 유발 위험이 크다. 철거 인부들이 코로나19 의료진 같은 복장을 갖추는 건 이때문이다. 걷어낸 슬레이트 처리도 까다롭고 엄격하다. 지정된 폐기장에만 버려야 한다. 이렇다 보니 철거비가 매우 비싸다. 철거 면적 한 평당 몇 십만 원까지 먹히는 현실이다. 얼마 전의 유행 따라 슬레이트 위에 함석을 덮었다면 철거비는 배가 된다. 3~4칸짜리 한옥 한 채 슬레이트 걷어내는 데 근 천만 원을 들먹일 정도다.

농촌 주민들 형편은 이 정도 경비로 철거할 수가 없다. 낡은 슬레이트가 아무리 건강에 위험해도 당장 돈이 없는 거다. 농촌마을 빈집이 대개 저절로 내려앉을 때까지 마냥 방치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슬레이트는 서둘러 없애야 할 물건이다. 그래서 정부가 일정액을 지원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한 채당 최대 352만 원까지 지원하던 것을 올해부터는 두 배쯤 늘려 700만 원까지 준다. 여기서 이 정책에 쏟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지원으로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슬레이트 지붕 57만 채를 올해부터 2033년까지 모두 다 철거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짚어야 할 구석이 있다.

철거비용 지원액 최대치를 두 배로 늘린 건 슬레이트 제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 사업비는 예년 수준인 듯하다. 같은 규모의 사업비로 개별 지원금만 배로 늘리면 사업량은 반으로 줄어든다. 실제 A씨의 경우 지난달 자원금을 신청하려 했을 때 올해 신청분은 진작 마감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내년에나 가능하다. 이에 A씨는 아래채 철거를 포기해버렸다. 자비 철거는 부담이 너무 커서다. 이로써 한 채의 슬레이트 지붕 철거는 기약없이 미뤄진 셈이다. 정부 의지와는 정반대다. 인터넷에도 철거비 신청이 너무 일찍 마감되어 실망했다는 불만이 다수 올라 있다. 반면 신청이 저조한 지자체도 아마 있을 거다.

슬레이트의 완전 철거는 분명 시급한 일이다. 정부는 원하는 농가로 하여금 언제든지 즉시 철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넉넉한 사업비 확보가 관건이다. 그 사업비가 당년에 다 집행되지 않으면 신청이 넘치는 지자체로 돌려주든지 다음해로 이월하면 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철거비도 전액 정부가 부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슬레이트는 70년대 정부가 농어촌 지붕개량 사업으로 보급했다. 볏짚 이엉 대신에 슬레이트로 교체케 함으로써 짚은 또 다른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필자 기억으론 그때 비용을 지원하며 농촌 슬레이트 지붕을 유도한 건 정부였다. 그런 점에서 그 철거도 당연히 정부가 떠맡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예산을 하루아침에 다 확보할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예산타령 않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공짜복지 대상을 찾지 못해 안달하는 나라다. 그런 터에 국민 건강이 걸린 농촌 슬레이트 철거 사업을 누가 급하지 않다고 하랴. 사업비 규모 또한 나라 살림이 감당 못할 정도가 아니다. 전액 정부 부담으로 철거해야 할 일이다. 철거완료 목표 시기도 훨씬 앞당겨야 한다. 정부가 슬레이트 무상 철거를 해준다면 표를 노린 공짜복지들과는 격이 다른 정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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