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홍의 경일시단]아버지의 손(이영현)
[주강홍의 경일시단]아버지의 손(이영현)
  • 경남일보
  • 승인 2023.08.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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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손(이영현)
 

 

고구마밭에서 잡풀을 뽑았더니

초록의 피비린내가

목장갑에 배었다


잡풀이 생존하는 방법은

움켜쥐는 것뿐이다

줄기는 뿌리를 움켜쥐고 뿌리는

흙을 움켜쥔다


아버지는 손이 컸다

항상 움켜쥐는데도 끝내 뽑혔다

나는 그게 싫었다


고구마밭에 붉은 꽃이 피었다

살아남으려는 것은 서로 닮았다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군가를 닮아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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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울음을 견디기 위해선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머리채 뽑혀 던져지는 풀들의 최후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줄기의 비린내가 목장갑에 배이고 아픔에 젖는 일들도 예사롭지 않다.

근성을 갖고 무섭게 움켜쥐어야 살아남는다.

상대가 감탄을 갖고 힘의 작용을 포기할 때까지 버티어야 한다.

나는 너에게서. 우리는 모두에게서 나무에 깊이 박힌 못처럼 감당하고 살아야 한다.

팽팽한 긴장으로 항복점까지의 생존의 위대한 근성.

그 치열한 방식은 그저 버티고 견디는 일.

쉽게 뽑혀 나간 아버지. 단단히 움켜지는 데 실패한 손만 큰 아버지.

그 아쉬운 의지가 고구마밭의 붉은 꽃에서 새롭다.

뽑히는 잡초들의 간단한 생의 방식이 그 누굴 닮았다.

더욱 풀 비린내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또 얼마큼 움켜쥐고 살았을까?-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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