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문예지 폐간에 드는 생각
[경일춘추]문예지 폐간에 드는 생각
  • 경남일보
  • 승인 2024.07.01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채영 마루문학 발행인
안채영 마루문학 발행인


52년 전통의 문예지 ‘문학사상’이 폐간했다, 세상이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소리를 내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이때의 질문 하나, 문학은 과연 누구의 전유물인가?

생태계에서 침묵은 공허를 의미한다. 이렇듯 무심한 고요는 문학의 인연. 그 네트워크 문학계 안의 문학권력을 넘어 사회 생태계의 한 종이 소멸하는 것을 암시한다. 고개를 돌려 다른 생태계를 바라볼라치면 열광하고 화려하고 시끄럽고 뜨겁다. 하지만 시집과 문예지를 독자들은 자꾸 외면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오늘날의 시인은 인기와 상관없이 그저 ‘생존’만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산다. 어떤 불꽃도, 고민도, 미련도 없이…, 나만이 알아볼 암호로 가능한 한 독자들이 자주 찾지 못하게 재미없게 글 쓰는 나를 많은 반성해야 할 때다. 사실 문예지가 독자를 잃었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2019년 문예지 100주년 공동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예지 독자 249명 중 93.0%에 해당하는 231명이 문예 창작자였다. 일반 독자는 7% 남짓일 정도로 문예지를 소비하는 사람은 결국 문예지를 만드는 사람이었던 거다. 몇 달 전 문학사상 발행인 임홍빈 대표가 돌아가셨다. 그 때의 소회를 그 맥을 이어갈 따님께 보낸 문자가 아직도 따뜻한데 그렇게 맥없이 폐간했다. 시니어 창작반 어르신 제자 3분의 시집을 발간했다. 7년의 창작반 시작을 모아 책을 낸 것이다. 나이 많은 제자의 출판이 기쁜 일이지만 더 감사한 것은 흔쾌히 출판을 맡아준 시와 정신 출판사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돈이 안 되는 일이기에 그렇다.

시집 1000권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오륙백은 든다. 잘 안 나가는 책은 출판단지에 보관료도 솔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의 시집을 ISBN 코드가 등재된 장착 시집으로 내어 주셨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한 책 발행은 숱한 밤의 노고를 먹고 자란다. 누군가의 과로와 누군가의 몇 대박의 코피 쏟음이 필요한 노작이다. 그보다 나이 구순의 노인이 살아온 삶 가운데의 사유는 어찌 값어치를 논하겠는가. 다시금 이런 대화가 살아 숨 쉬는 사회를 꿈꾼다. “오늘 내가 한 턱 낼께, 그래 밥 함 살께 차 한 번 살게”보다 “시집 한 권과 문예지 한 권 내가 살게”가 대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세상. 구순 노인의 시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애를 쓰는 환경이라면 언젠가는 문학사상 복간의 소식을 듣는 기쁜 날도 오지 않을까. 비록 폐간을 무덤덤하게 넘겼을지라도 복간은 기뻐하지 않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정만석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