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섬 늑도 [1]작은 섬이 품은 200년의 개척시대
비밀의 섬 늑도 [1]작은 섬이 품은 200년의 개척시대
  • 임명진
  • 승인 2024.07.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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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대신 무역으로 철의 시대 호령한 작은 거인
지난 5월 우주항공청이 들어선 사천시는 세계 5대 우주강국을 목표로 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우주항공의 대표 도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2032년 달 탐사를 시작해 2045년에는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일명 ‘스페이스 광개토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우주항공 분야의 중심에 서 있는 사천시가 2200년 전에는 고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의 바다를 잇는 해상무역을 개척한 중심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고대 동아시아의 거친 바다를 개척한 사천 지역이 이제는 미래 우주항로를 개척해야 하는 막중한 무대에 다시 우뚝 선 것이다.

◇발 아래 숨겨진 고대 유적…이유 있는 국가사적

사천시의 대표 관광지인 해상케이블카 노선 지척에 있는 작은 섬, ‘늑도’는 축구장 면적의 몇 배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박물관 수장고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유물과 유적들이 출토돼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유적과 유물을 연구한 학자들은 늑도가 고대 한반도와 중국, 일본의 특징을 보여주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늑도는 사천시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섬의 크기는 길이 970m, 너비 720m, 면적 46ha(약 14만평)의 작은 섬으로 2003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행정지명상 사천시 늑도동에 속하며 가장 가까운 내륙의 항구인 삼천포항에서 남서쪽으로 불과 3㎞ 거리의 해상에 위치한다.

육지와 매우 가까이 위치해 있고, 인근에 초양도, 저도, 학섬 등 작은 섬들로 둘러싸여 있어 큰 파도가 없는 곳이지만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드넓은 남해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고려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막을 군사기지가 설치되었으며 인근 해역이 사천만과 남해로 이어지는 교통, 군사 요충지역에 속해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사천해전을 비롯해 맹활약한 곳이다.

늑도는 2002년 남해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되면서 내륙화가 됐다. 사천시는 2003년 늑도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국비를 지원받아 현재 섬의 절반이 넘는 부지를 매입하고 있다.

 
사천시 늑도동 늑도 전경. 바로 앞부터 삼천포항, 초양도, 늑도. 늑도 뒤로 다리로 이어진 섬은 남해다.


◇1979년 잠에서 깬 청동기-철기 대형 유적

늑도 유적은 1979년에 그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후 1985년, 1998년에 부산대학교 박물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경남고고학연구소 등이 발굴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섬 전체가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형성된 대형 유적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발굴조사한 면적은 섬 전체로 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무려 수 만여 점이 넘는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아직까지 출토 유물에 대한 보고서가 완료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까지 나올 정도이다.

발굴조사에 참가했던 학자들은 “섬 도처에 토기의 파편이 널부러져 있고, 땅만 파면 유물이 나오는 그야말로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출토된 유물의 면면은 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륙이 아닌 작은 섬에서 당시 한반도와 중국,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지닌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희 부산대학교 고고학과 교수는 “동아시아의 유물이 이렇게나 작은 섬에서 집중해서 많이 나온 사례가 없다. 특이한 곳으로 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말했다

2200년 전 당시 고대 한반도 남부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 체제였으며 중국의 한나라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했다. 일본은 규슈 지역에 야요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늑도는 학자들에게는 의문의 연속인 미스테리한 섬으로 불린다. 남해안의 작은 섬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토기류가 출토되고 다른 유적에서는 부장품으로 발굴되는 값비싼 외래계 유물이 주거지에서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늑도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지만 출토된 유물을 분석해 보면 기원전 2세기 무렵인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부터 200여 년 가량 번성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늑도가 당시 중국과 일본을 잇는 고대 해상무역을 한 것으로 추정하게 한다”고 말했다.

 
중국 진나라 시대 화폐, 반량전
점토대토기
중국계 낙랑토기
일본계 야요이 토기

 

◇쏟아진 외래계 유물…국제교역의 흔적

늑도의 가치는 외래계 유물에 있다. 중국계인 낙랑토기와 화폐인 반량전, 오수전, 동촉(화살촉)을 비롯해 값비싼 한나라 시대 거울인 ‘한경’ 등의 사치품들이 작은 섬, 늑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학계는 중국계 문물의 대부분은 낙랑군과의 교류를 통해 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경은 특히 일본 북부 규슈의 지배층 부장품에서도 발굴되고 있어 중국 화폐와 함께 당대에 중요한 교역품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외래계 유물은 내륙의 다른 유적에서도 출토되고 있지만 늑도는 그 양이 면적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계 유물은 일본계 유물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은데, 이는 교역을 통해 한반도 남부의 지배층들이나 대부분 선진문물에 대한 수요가 높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학자들은 일본계 유물들이 작은 섬에서 대거 출토되는 점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다. 내륙에서는 잘 발굴되지 않았던 야요이 토기를 비롯해 스에키 등의 다양한 일본계 토기들이 늑도에서 대거 출토되면서 당시 일본 열도와의 교류 관계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장용준 국립진주박물관 관장은 “늑도 유적 발굴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유물 출토량이 엄청났다. 이 많은 유물들이 어디서 만들어졌고 운반되어 왔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며 “늑도가 당시 국제 해상교역의 랜드마크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섬 자체가 유적이고 고대 역사기록의 보고인 곳”이라고 평가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천바다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늑도 주변 풍경.
 
김상일 사천시 학예연구사


“2000년 전 고대 늑도의 실체 규명 박차”
김상일 사천시 문화체육과 학예연구사


우주항공청이 개청한 사천에서 2000년 전 고대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주도한 대형 유적의 존재는 큰 의미가 있다.

처음 발굴 당시만 해도 늑도가 국제 무역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이 정도면 무역을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늑도 유적의 가장 큰 의문점은 주변에 더 큰 섬들이 있는데 왜 늑도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인근의 초양도에서도 발굴을 진행했지만 늑도만큼 의미있는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섬의 전체 부지가 발굴되지는 못했다. 가장 관심이 높은 곳은 현재 마을이 있는 거주지와 제사 유적지를 꼽을 수 있다.

제사는 당시 항해에 나서는 선박의 안전을 비는 의식이다. 하늘과의 관계이므로 섬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에 있지 않을까 추정하고 있다.

교역을 했더라면 필요했을 물자를 쌓아두는 창고나 항만시설 같은 유적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2000년 전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2m 가량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을 발굴하게 되면 늑도라는 섬의 성격을 좀 더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늑도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나갈 수 있도록 실체 규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김상일 사천시학예연구사가 늑도 유적 발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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