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강을 빌려준 자전거
[경일춘추]강을 빌려준 자전거
  • 경남일보
  • 승인 2024.07.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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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 시인
이필 시인


강을 따라 달린다. 죽은 잎이 달라붙는다. 비를 몰고 오는 남동풍에 버드나무 가지가 바삭바삭 뒤집힌다. 땅이 밟히며 쉿쉿쉿 소리를 낸다. 길에서 먼지가 떨어진다. 그리고 머리 위로 작고 푸른 잎들이 부드럽게 충돌한다.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명상적이다. 공간이 공간을 밀어내면 체인이 돌고, 생각이 오고 간다. 기계는 사람의 몸에서 한 뼘 떨어져 있다. 은유적이다. 바퀴 두 개, 핸들 바 두 개, 페달 두 개. 자전거와의 접촉은 다감하다. 손, 발, 엉덩이. 이 녹슨 3단 변속 기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금속이 나의 일부인 것처럼 대신 울어 준다. 바람을 만들어주고 대신 숨을 쉬어 준다. 그런 게 고맙다.

이반 일리치는 ‘공생을 위한 도구’에서 아무리 함께 나누어 써도 부작용 없는 아름다운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로 자전거와 도서관과 시(詩)이다. 여기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도로 위 자동차도 일정한 임계치를 넘으면 잉여 시간을 독점하는 ‘시간의 횡령’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성장주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자전거는 분명 회색 도시를 구원하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타는 수녀님을 내려다보면 웃지 않을 신이 누가 있는가. 뒷바퀴에 사뿐 밟힌 동백만큼 아름다운 소멸이 있는가. 문 앞에서 저녁을 기다리며 기대어 있는 자전거만큼 매일의 부활을 알지 못한다.

자전거를 묘사하려면 먼저 자전거를 사랑해야 한다. 자전거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시가 그렇듯이 자전거와 사람의 결합도 그러하다. 비 속에 앉아 있을 수 있고 햇빛 속을 항해할 수도 있으며, 한여름밤을 지나가는 빛나는 갑옷 입은 말이 된다. 자전거는 단순히 탈것, 그 이상의 존재다. 안장에 앉는 순간 우리는 켄타우로스가 된다. 야생과 길들임 사이에서 우리는 존재의 두 가지 상태에 끼이게 된다. 자전거를 타면 목줄 풀린 채 쫓아오는 개가 증명해준다. 개는 죽자 사자 하고 이 짐승인간을 쫓아온다. 물론 개의 추적을 따돌리는 ‘개 스프레이’가 있다. 분사하라. 망설임 없이.

자전거는 누구의 시간도 공간도 에너지도 빼앗지 않는다. 공정하다. 일상의 사상은 이 기하학적 바퀴와 페달에서 온다. 고요는 자전거를 타고서만이 올 수 있다. 다시 안장에 앉으면 타오르는 옥수수밭처럼 지구는 어제보다 더 뜨거우며, 머리 위에는 텅 빈 하늘이 무한의 원을 그리고 있다. 비둘기 몇 마리가 교각 밑에 앉아 쉰다. 공사 차량이 멀어져 간다. 폭우가 내릴 것이다. 희미한 구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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