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버지의 애창곡 ‘바위고개’
[기고]아버지의 애창곡 ‘바위고개’
  • 경남일보
  • 승인 2024.07.31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정규(사천시 사남면 월성1길)
오십여 년 전에 우리 집에는 전축이라는 것이 두 대 있었는데 라디오도 되고 턴테이블이 있어 LP판으로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기계였다. TV가 귀하던 시절이라 주로 라디오를 들었는데 당시에 인기 프로그램은 ‘법창야화’, ‘전설따라 삼천리’, ‘왕비열전’ 등이 있었다.
 
어머니는 MBC라디오 연속극 ‘왕비열전’ 광팬이셨고 그 방송이 시간대에는 채널이 어머니 차지였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해 LP판 동요집 두 장과 본인께서 감상하려고 우리가곡집 두 장을 사오셨다. 너무 신기해 시간만 나면 동요를 듣고 또 들어 며칠 만에 다 외어버렸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버지가 들으시던 가곡을 듣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노랫말을 정확히 이해는 할 수 없었으나 가락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곡집 LP판에 수록된 곡들은 가고파, 바위고개, 수선화, 동심초, 그 집 앞, 그네, 봄 처녀, 선구자, 봄이 오면, 자장가, 내 마음 등으로 바리톤 오현명 교수, 소프라노 백남옥 교수 등 몇분의 성악가들이 부른 주옥같은 곡들이다.
 
그중에서 아버지가 가장 애창하시던 곡은 이흥렬 작사 작곡의 ‘바위고개’다.
 
아버지는 노래도 잘 하셨지만 하모니카를 잘 연주하셨는데 거의 달인 수준의 연주자셨다. 이 곡을 자주 연주 하셨는데 그럴 적마다 나는 이 노래를 고즈넉하게 따라 부르곤 했다.
 
노래의 주인공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총각 머슴이었고 사랑하던 님을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그 여인을 잊지 못해 늘 만나던 고개에 와보니 님은 떠나고 없어 옛날을 추억하며 눈물짓는 슬프다 못해 가슴 아린 사랑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작사의 배경은 분분하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유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하기도 하며 봉건사회 머슴의 아픔을 노래로 표현했다는 주장도 있고 여러 가지 구전돼 오는 전설도 있다.
 
원작사자는 작곡자 이흥렬의 친구인 이서향인데 월북한 인사라 발표 당시에 작사자를 이흥렬로 했다고 전해지는데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
 
바위고개 지명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서울 우이동의 우이령이라는 주장도 있고 작사자 작곡자의 고향인 함경도 원산 어디에 있는 고개가 아닐까 하는 주장도 있는데 바위고개 시비(詩碑)는 현재 서울 우이동 솔밭공원에 있다.
 
오래전 소천하신 아버님을 추억하며 바위고개를 다시 한번 불러 본다. 귓가에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정만석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