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영 마루문학대표
아스팔트에 그려진 흰 선은 안전을 인도하는 선이다. 선을 지킬 때 자동차는 안전을 보장 받는다. 교통사고는 대부분이 탈선을 전제로 발생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선을 생명선이라고 표현한다. 교통질서에서 선 유지를 위반하면 교통범칙금을 부과해 그 질서를 유지하려 애쓴다.
요즘은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옛날엔 짝꿍이랑 책상 하나에 둘이 앉았다. 아이들 가운데 더러 선을 그어놓고 “니, 이 선 절대로 넘어 오면 안 된다” 며 티격태격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선 때문에 잦았던 분쟁은 친구간의 다툼이 되기도 했다. 그 때의 선은 넘지 말아야할 나의 영역에 대한 인식의 자연스런 교육이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선의 경계가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 선의 분쟁을 해소하는 방법을 교육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교양이나 에티켓으로 해결할 수 없는 즉시적이고 순간적인 도발로 발생하는 선 넘음에 대한 대처법을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이웃과도 담장이던 벽이던 서로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선이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 있다. 대부분 그 선을 넘어옴에 따른 불편함이 생기게된다.
분쟁은 늘 감정에서 생겨난다. 나 같은 마음으로 상대가 움직여 주지 않을 때 생겨난다. 당사자들은 경계에 대한 구분이 확실해도 그 사이에 고객이 끼이거나 사소한 불편이 누적되면 선을 본능적으로 따지게 된다.
지나친 친절이 빚은 경계와 선의 불투명은 결국 좋아야할 이웃과의 관계에서 불화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비단 선을 넘어 관계가 틀어진 경우는 이러한 사례에만 국한되는 일만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비일비재하게 많다. 결국 많은 관계가 얽히는 사회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는 선 지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도를 아느냐’는 말이 있다. 결국 그 말은 길을 아느냐는 말이고 선을 지키느냐는 말이다. 넘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선을 지켜가는 지혜를 배워야 세상살이를 잘 할 수 있다는 지혜를 배운 사례이다. 이웃간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 선, 선, 선을 지켰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