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도 예향이다. 그것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예향이다. 그곳의 경관도 경관이지만, 통영 출신 예인들의 지명도 때문에 더 그러할 것이다. 연극인 유치진, 소설가 박경리,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 시조 시인 김상옥,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등등 실로 그 이름만 들먹이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기라성 같은 예인들의 안태본이 바로 통영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예인 중에서 아호가 동랑(東朗)이자, 시인 유치환의 친형인 유치진은 한국연극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한국 연극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 때문에 통영이 한국연극의 발상지란 말을 듣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통영은 연극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그리고 현재 통영시 중앙로 152번지에서 로마의 검투사처럼 떡하니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극단이 하나 있다. 바로 극단 벅수골이다. 그래서 그 벅수골의 궤적을 일별해 보려 한다. 벅수골이 통영연극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벅수골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통영연극의 흐름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리겠다.
통영연극은 일제강점기 시작해 현재까지 그 역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통영연극은, 1927년 유치진이 조직한 문학서클 토성회(창립 회원 고두동·박명국·최삼한기·장응두·유치환)가 공연한 ‘칼멘’(메리메 작·유치진 연출)이다. 그러나 이 토성회가 해산된(1932년) 뒤로는 유기정·서성탄·황하수·서춘광 등이 중심이 돼 통영연극을 이끌게 된다. 1934년에는 추민이 문학좌를 창설한 후 카프 연극을 주도하기도 하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박정섭·서성탄·정진업·김아부·최배송·김용기 등이 통영연극을 주도한다. 1940년대에는 박재성·김춘수·김홍석·이복선·허창언 등이 통영연극을 주도하게 된다.
1945년 12월에는 유치환의 주도로 문인극회(회원 박재성·김용기·김상옥·김춘수·허창언)가 창립해 ‘눈먼 제로니모’를 공연하는 등 활동을 전개한다. 단체 이름을 연극부락으로 개칭한 후에는 ‘두뇌 수술’과 ‘산비둘기’ 같은 작품을 공연하기도 한다.
1950년에는 6·25 전쟁 당시 피난 차 통영에 내려왔던 유치진을 비롯한 국립극단 단원들이 통영연극인들과 함께 ‘계곡의 그늘’과 ‘뻐꾸기’라는 작품(허창언 연출)을 공연한다. 이 시기엔 시인 김춘수도 연극 활동(‘태양의 아들’ 연출)에 참여한다. 1950년대의 통영연극은 주평·한하균·김봉한·정연배·최성찬·김일도·정두룡·정창수·정도수 등이 주도한다.
1960년대는 최성찬·김천수·진홍근·김일도·이소원 등이 통영연극을 주도하는데 그들은 1962년 10월에, 10월 극회를 창립하고 ‘마의태자’(정연배 연출)와 ‘조국’(허창언 연출)을 공연한다. 1965년 1월에는 한국연극협회 충무지부가 결성되고 허창언이 초대 지부장을 맡는다. 또한 허창언의 주도로 춘추극회가 창립되기도 한다.
1980년대 초반이 되면, 드디어 극단 벅수골이 그 고고의 성을 울린다. 바로 1981년 3월 20일, 창단 공연으로 ‘토끼와 포수’(박조열 작·장현 연출)를 무대에 올리면서, 벅수골의 창단을 만방에 고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창단 멤버는 극단 대표 장현을 비롯한 장영석·김윤일·김철균·박연주·허동진·강지건·지태호·김정희 등 총 9명이다. 그들은 연이어 ‘이상무의 횡재’와 ‘토막’ 등을 공연하고, 1983년에는 제1회 경남연극제에서 ‘알’(이강백 작·장현 연출)로 대상을 받아, 그해 부산에서 개최된 제1회 전국지방연극제에 경남 대표로 참가하기도 한다.
1986년 5월 23일, 벅수골은 그동안 소극장이 없던 통영에 벅수골 소극장을 개관하고는 ‘방황하는 별들’(장창석 연출)과 뮤지컬 ‘꿈 먹고 물 마시고’(엄경환 연출)를 잇달아 공연하면서 소극장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동시에 경남은 물론, 서울과 부산 극단까지 초청해 제1회 시월 연극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 연극제를 주도했던 장현 대표가 급서하는 불운을 당하기도 한다. 느닷없는 장현의 타계로 벅수골은 새 대표에 장영석, 상임 연출에 장창석을 추대한다. 두 사람은 형제지간이다. 그 후 시월 연극제는 거창으로 가서 거창국제연극제의 모태가 된다. 1989년 3월에는 순성소극장이 개관되는데, 이로써 통영에는 두 개의 소극장이 존재하게 된다.
1990년대의 통영에는 극단 벅수골과 극단 순성, 그리고 극단 365 등 세 개의 극단이 활동하게 되고, 1997년에는 통영시민문화회관이 개관되기도 한다. 이 시기에 벅수골은 장창석을 대표로 추대한 후, ‘타인의 방’·‘화도’·‘탈의 소리’ 등등의 작품을 잇달아 공연한다. 1993년에 벅수골은 ‘봄날’로 제11회 경남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연기대상·연기상 등등을 수상한 후, 제11회 전국연극제에 참가하여 장려상을 받기도 한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 극단 벅수골은 다시 통영 유일의 극단이 되어 자체 공연은 물론이요, 대규모의 연극축제와 연극 교육프로그램까지 시행하는 등 활동 반경을 점차 넓혀 나간다. 2000년엔 ‘절대 사절’·‘양철북’·‘개띠 용띠’ 등등을, 2001년엔 ‘돼지사냥’과 ‘해평 들녘에 핀 꽃’을, 2002년엔 ‘통일십우도’와 ‘숲속의 대장간’ 등등을, 2003년엔 ‘그 섬엔 신이 살지 않는다’와 ‘구두코와 구두 굽’ 등등을, 2004년엔 ‘선주’와 ‘불타는 소파’ 등등을, 2005년엔 ‘리타 길들이기’와 ‘날 보러 와요’ 등등을 공연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한 벅수골은 통영 출신 극작가들의 창작 희곡도 꾸준히 공연해 왔는데, 강수성의 ‘떠나는 사람들’과 ‘구토’, 이국민의 ‘화도’와 ‘먼 땅 좋은 기별’ 등등의 공연이 그것이다.
2000년대 이후 홀로 통영연극을 주도해 온 벅수골. 2006년부터 홍콩과 시애틀, 그리고 유럽으로 해외 공연을 나가고 있는 벅수골. 창단 30년사를 발간(2011년)한 벅수골. 2008년부터 통영연극예술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벅수골. 통영을 지키는 장승 벅수처럼, 통영연극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벅수골. 장영석·장창석·이상철·박승규·제상아·이규성·허동진·하경철·유용문 등이 주축 멤버인 벅수골. 현재까지 총 300여 회가 넘는 공연 기록을 가진 벅수골. 그런 벅수골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벅수골이여, 영원하라.
이상용 전문가(문학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