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보 함양백전초등학교 교사
연일 극심한 무더위로 지쳐가는 요즘, 파리올림픽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돼주었다. 파리의 중심, 센강 위에서 펼쳐진 낭만적인 개막식, 100년이 넘은 체육시설이나 시내 곳곳의 유명 관광 명소를 적극 활용한 경기장, 역사상 최초로 선수단 남녀 성비의 균형을 맞춘 경기 운영 방식 등 파리올림픽만의 새로운 볼거리와 이슈들도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를 응원하며 초등교육 현장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두 가지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다.
먼저, ‘4.9㎜ 명승부’라 불리는 양궁 남자 개인 결승전이다. 금메달의 향배를 가른 마지막 두 화살의 거리 차이인 ‘4.9㎜’는 아주 미세한 차이다. 아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학생자치활동의 교육적 효과 여부도 항상 미세한 차이로 결정된다. 아이들이 직접 정하는 자치활동의 주제는 열이면 열, 항상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이다. 자치활동은 학생들이 전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교사들은 활동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아이들 ‘몰래’ 유익함의 한 두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을 신의 한 수로 여긴다. 교사의 욕심에 자칫 세 방울 이상 떨어뜨리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내 자치활동이 경직되고 그 취지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4.9㎜’의 차이를 통해 유익함의 ‘한 방울’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다음은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항상 밝은 ‘미소’를 띄우는 한 탁구 선수의 태도다. 승부가 결정되는 냉혹한 스포츠 경기에서 과정을 즐기려 노력하고, 지더라도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며 흠뻑 축하해주는 모습은 열정은 갖되 집착하지 않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많이 닮았다. 나는 평소 아이들을 지도하며 여러 체육대회에 출전할 기회가 있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가장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은 바로 아이들이 아닌 나 자신이다. 경기가 끝나면 금세 결과의 희비를 털고 일어나 상대 선수를 새로 사귈 귀한 친구로 여기며 희희낙락 관계의 웃음꽃을 피우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승패를 떠나 ‘미소’를 유지하는 모습은 결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7년 전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 미성숙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능력이고 당연한 권리라 여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한 것인지를, 또 어떨 때는 주객이 전도돼 도대체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지를 모르게 될 때가 많아진다. 파리올림픽을 함께 하며, 또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나는 오늘도 조금씩 배우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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