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국 소소책방 대표
여름에 무슨 독서냐 할 것이다. 요즘 시절엔 주변에서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독서의 계절이라 하면 대부분 가을이 제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에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만큼 스님께서 책을 사랑하셨다는 증거이리라. 한때 많은 사람이 찾고 읽었던 ‘무소유’는 스님의 유언으로 더는 새 책으로 구할 수 없다.
무소유에 실린 ‘그 여름에 읽은 책’은 어느 해 무더운 여름 해인사 소소산방에서 8권으로 이뤄진 ‘화엄경 십회향품’을 10여 회 독송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스님은 “여름엔 무더워서 바깥 일을 할 수 없으니 책이나 읽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밖으로 나돌기 좋은 시절에 어디 실내에 박혀 책을 잡는 것은 엉덩이가 들썩거려 하기 힘든 일이다. 요즘 같이 무더위가 심할 때 오히려 책을 펼치기가 더 좋지 않을까. 에어컨 바람 시원한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책을 펼치고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멋진 피서가 있을까. 꼭 해변이나 계곡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책도 인연이 있어 어느 시절에 우연히 마주한 책이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거나 어느 문장이 잊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요즘은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읽을거리 볼거리가 하도 많은 시절이라 그런 인연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가진 것이 적어야 인연도 귀하다 생각이 들텐데 곁에 가진 것이 많으면 뭐든 가치를 제대로 헤아리기 힘들다. 무엇이든 넘치는 것보다 약간의 모자람이 있는 편이 더 나은 삶이 아닐까 싶다. ‘그 여름에 읽은 책’에 보면 스님이 ‘개경게’(경을 펴며 읊는 게송) 외는 장면이 있다.
“더없이 심오한 이 법문 /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운데 / 내가 이제 보고 듣고 외니 / 여래의 참뜻을 바로 알아지이다.”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독서인이라면 책을 펼칠 때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혹은 서재의 서가에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을 꺼내며 이 책이 내게 훌륭한 스승이자 도반이길 바라는 그런 마음 말이다.
스님은 ‘읽는다는 것’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내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라고 뜻매김하셨다. 낡은 무소유의 먼지를 털어내고 펼쳐보니 이 문장이 나왔다. 여름도 이제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하지만, 책 대여섯 권 배낭에 넣고 어디 첩첩산중에 들어가 이 무더위가 가실 때까지 살다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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