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영 마루문학 대표
어릴적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큰 줄거리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중년이 된 지금 그 책을 다시 읽었다. 새로움에 놀라고 무엇보다도 그 젊은 시절 한 순간의 잊혔던 추억의 떠오름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한다. 30년의 시간여행 마법이 있다. 잠재적 의식에 묻혀있던 기억이 불현듯 재생되는 생생한 느낌. 많은 경험과 나이를 먹은 지금 충분히 공감되는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죄와 벌’은 30년 전과 또 다르다.
생떽쥐뻬리의 ‘어린왕자’에 얽힌 이야기가 유명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머나먼 별에서 여행 온 왕자의 동화로…, 두 번째는 사춘기 감성의 스윗한 연애 소설로…, 세번째는 비로소 한 특별한 직업을 가진 소설가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철학 교양서가 된다는 얘기다.
올 여름 유난히도 더웠다. 하지만 제10호 태풍 산산 탓인지 가을이 문턱에 왔음을 직감한다. 과거에 읽었던 책의 중독을 권해본다. 그러면 처음 읽는 책의 미답의 신선함과 또 다른 익숙하지만 새로운 그 무엇의 느낌을 선물할 것이다. 마치 차로 다녔던 익숙한 길거리를 걸어서 걷는 느낌의 새로움 말이다.
오늘은 권독에세이의 느낌이니 ‘죄와 벌’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난 대표적인 러시아 문학 광인데 ‘죄와 벌’의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내내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수 십년 째 해왔다. 비단 줄거리를 기억 못해 고민한 근본은 죄와 벌이라는 소설 제목의 간결하면서도 강한 형용의 대비 때문이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죄(罪)와 벌(罰)의 간극 말이다. 죄는 누가 규정하는 것이고 그 죄가 부당하다면 벌은 가당한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이 내면에서 일어 왔기에 꼭 읽고 싶었다.
법의 정신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허용될 독서모임이지만 그 모임에 참석해 낭독한 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 직전에 감형돼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유배를 떠나는 작가가 느낀 심리상태의 특별함이 주는 뉘앙스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와 벌’이 주는 제목의 형용은 수십 년을 돌아 책을 다시 들게 한 마력이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계절이다.
이 계절 책 한권을 집어봄이 그 시작이 아닐까. 벌이 벌이 아니고 죄가 죄가 아닌 오늘의 사회 현실에서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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