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여성혐오범죄
[여성칼럼]여성혐오범죄
  • 경남일보
  • 승인 2024.09.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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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정윤정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장


“요즘 ‘여성혐오범죄’가 너무 많이 일어나.”, “이유 없이 여자라고 공격을 하니 딸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야.” 지난밤 언론에서 본 여성 폭행, 여성 살인사건을 이야기하며 대중들이 하는 말들이다. ‘말’은 그 사회 현상을 보여준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성혐오’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단순한 개인의 정신병 또는 단순한 개인의 보복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은 정확히 ‘여성’,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는 그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를 말해준다. 인종차별이 사회문제인 나라가 있고, 종교 갈등이 사회문제가 된 나라도 있고, 극단주의의 선동이 사회문제가 된 나라도 있다. 어떤 현상을 두고 그 사회가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문제로 인식하게 되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그 사회가 조속히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로 인식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엄청난 고통과 댓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경악스러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회가 사회문제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 개인의 문제이지 이게 왜 사회문제냐고 그 사회가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강남역의 한 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 김씨가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일명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다. 김씨는 화장실에서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여성을 기다려 범행을 저질렀으며, 살해 동기로 “평소 여자들이 무시해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김씨 개인의 정신병으로 치부했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부터 최근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따라가 엘리베이트 안에서 야구방망이로 폭행한 사건까지 연이어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 살인이 일어나는데도 여전히 ‘여성혐오범죄’라는 사회적 문제로 명명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접할 때 마다 대중은 “요즘 ‘여성혐오범죄’가 너무 많이 일어나”라고 말하는데도 정작 그 사회는 ‘여성혐오범죄’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성혐오범죄’란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풀기 위해 어떤 여성이든 상관없이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언론이나 수사기관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묻지마범죄’라고 부르는데 ‘묻지마범죄’와 ‘여성혐오범죄’는 확연히 다르다. ‘묻지마범죄’는 그 대상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벌이는 범죄이다.

하지만 ‘여성혐오범죄’는 대상을 여성으로 정한다. 즉 피해자를 여성으로 선별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성이라서’라는 어느 집단에 대한 편견이 피해자를 선별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 선별’과 ‘특정집단에 대한 범죄 동기’가 혐오범죄임을 말해준다.

최근 영국은 선 넘는 여성혐오를 테러로 규정하는 ‘혐오범죄 대응 전략’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동안 사회문제로 인정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다며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혐오를 부추기는 집단을 단속한다고 했다.

한국이 ‘여성혐오범죄’를 사회문제로 인정하지 않는 동안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이미 온라인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페미니스트’를 ‘남성혐오주의자’로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여성에 대한 도를 넘는 혐오를 만들어 내고, 여성에 대한 테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제라도 당당히 ‘여성혐오범죄’라 명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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