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불편했던 과거, 이제는 미래교통 중심지로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이 있다. 1리는 ㎞로 환산하면 대략 0.393㎞, 1000리는 393㎞, 지금의 서울과 진주만큼의 거리다. 유독 진주를 천리길이라고 부른 까닭에 대해선 지리산 자락과 남강 지류가 곳곳에 뻗어 있는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가야 도착하는 진주의 독특한 지형에 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노래가 1941년에 발매돼 큰 인기를 끌었다. 진주는 그만큼 교통이 불편한 도시였다.
◇교통 불편에 도청도 이전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 진주는 당시 주요 개항장이었던 부산과 마산과의 교통도 쉽지 않았다. 도청 소재지였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물자의 이동은 1909년에 ‘진주-삼천포’ 간 도로개설을 계기로 주로 가까운 선진항, 삼천포항과 같은 바닷길을 통해 이뤄졌다.
진주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쓴 ‘진주대관’에는 ‘마산 진주의 간선 140리 사이에는 크고 작은 고개가 여러 개 있고 하루 노정으로는 너무 길어 종래 잡화, 해산물, 종이, 목면 등에 한해 사람과 말에 의해 겨우 운수 편을 유지했고 더구나 지게 운임 2원, 승마 한 마리 4원 안팎을 요구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쌀 등은 진주로부터 30리 거리인 구해창(지금의 사천 축동면)에서 배로 반출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마저도 진주 도심으로 들어오려면 진주성 앞 남강에서 다시 나룻배를 이용했다.
일제는 식민지 수탈을 위해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면서 항구와 철도가 깔린 부산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1909년 처음으로 도청을 교통이 불편한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도청은 진주 사람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1925년 부산으로 이전한다.
김중섭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도청이 이전하면서 행정도시의 위상을 부산에 내어준 진주는 광복 이후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까지 개통되면서 국가 경제 발전의 축에서도 밀려나 더욱 낙후 지역으로 남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1912년 ‘진주-마산’ 시외버스 운행
진주-삼천포 간 도로개설에 이어 1910년에는 ‘진주-마산’ 간 도로가 개통됐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1911년에는 진주에 거주하던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진주-마산’, ‘진주-삼천포’ 구간의 버스 정기노선 영업 인가를 받고 이듬해 9월 ‘진주-마산’ 노선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선 시기의 시외버스 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차량의 등장은 수로인 배로는 이틀, 육로인 마차는 하루가 걸리는 마산과의 이동시간을 4~5시간으로 크게 단축하는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역사를 가진 진주 시외버스는 지금은 수도권 등 40여 개의 정기노선을 가지고 있다.
진주는 2005년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면서 서울까지 6시간 남짓 걸리던 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크게 단축되면서 수도권 접근성이 한층 쉬워졌다. 유등축제와 개천 예술제 등 지역축제를 찾는 관광객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진주 인근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의료나 쇼핑 목적으로 진주를 찾으면서 서부경남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다지는 기반이 됐다.
오늘날 진주시외·고속버스터미널은 1995년 지금의 가좌동으로 통합 이전을 결정했지만 구도심 공동화 우려 등의 이유로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업이 완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25년 진주역 개통…내년 100주년
일제는 식민 통치를 위해 1913년 당시 진주와 가장 가까운 항구였던 사천 선진항과 진주 도심을 잇는 철도를 계획했지만 시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진주와 마산 간에 1925년 6월 철도가 이어지게 된다. 비록 도청은 떠났지만 여객열차와 화물 열차가 운행되면서 진주는 서부경남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떠 올랐다.
1939년 12월 한 달간 진주역의 승·하차 이용객은 3만 명에 달했는데, 당시 진주의 총 인구수가 4만 7259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용객이 상담했음을 알 수 있다.
김경인 진주시학예연구사는 "실제 1933년 제작된 지도를 보면 종래 진주성 주변에만 조성돼 있던 종래 시가지의 모습이 진주역 주변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2021년에 진주역이 마산 관리역 산하에 들어가는, 지위가 격하되는 일이 발생하자 진주 지역사회가 거세게 반발한 이유도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진주역은 2012년 10월 진주~마산 간 복선 전철화 공사로 선로를 옮겨 설치함에 따라 지금의 가좌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역 이전과 함께 운행을 시작한 KTX를 비롯해 ITX-새마을호, 무궁화호까지 진주역을 기점으로 운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수서역’까지 ‘SRT 경전선’이 첫 운행을 시작했는데, 첫 출발 매진을 기록하며 철도 수요가 여전함을 보여주면서 2년여 만에 다시 관리역으로 승격됐다.
◇교통에서 진주의 미래를 찾다.
진주는 오는 2030년에는 남부내륙철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지금도 KTX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창원으로 우회하는 기존 노선이 아닌 진주로 바로 직행하기 때문에 진주에서 서울까지 2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진주는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기존의 도시 교통을 대신할 ‘미래형 도심항공교통’산업을 선도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KAI)와 회전익 비행체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비행장을 올 11월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미래항공 기체 실증센터 구축을 통해 국내 1호 생산기지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진주는 나룻배에서 철도, 도로, 공항, KTX로 이어지는 교통 변천사를 거쳤다. 이러한 교통인프라가 혁신도시, 국가 항공 산단 등 국가 정책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큰 기반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엔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은 거리상의 개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천리라는 먼 길도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이 발달한 도시로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글=임명진기자·사진=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진주역 차량정비고(총탄 흔적)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1925년 진주역이 들어서면서 기차를 정비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당시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보존 상태가 양호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6·25 때 치열한 전투로 생긴 총탄 흔적이 외벽에 남아 있다. 2005년 우리나라 철도 문화재로 등록됐다.
■진주공항->사천공항
사천공항은 원래 1967년 진주공항으로 출발해 1969년 사천공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6년 한 해 96만9000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통영·대전 고속도로 개통과 KTX 운행으로 2013년에는 11만 6106명으로 이용객이 급감했다. 2010년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을 중단하고, 2015년에는 대한항공마저 적자를 이유로 취항 중단을 통보했다가 서부경남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철회했다. 지금은 진에어가 김포-진주/사천노선, 대한항공이 제주-진주/사천노선을 운영 중이다.
◇교통 불편에 도청도 이전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 진주는 당시 주요 개항장이었던 부산과 마산과의 교통도 쉽지 않았다. 도청 소재지였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물자의 이동은 1909년에 ‘진주-삼천포’ 간 도로개설을 계기로 주로 가까운 선진항, 삼천포항과 같은 바닷길을 통해 이뤄졌다.
진주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쓴 ‘진주대관’에는 ‘마산 진주의 간선 140리 사이에는 크고 작은 고개가 여러 개 있고 하루 노정으로는 너무 길어 종래 잡화, 해산물, 종이, 목면 등에 한해 사람과 말에 의해 겨우 운수 편을 유지했고 더구나 지게 운임 2원, 승마 한 마리 4원 안팎을 요구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쌀 등은 진주로부터 30리 거리인 구해창(지금의 사천 축동면)에서 배로 반출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마저도 진주 도심으로 들어오려면 진주성 앞 남강에서 다시 나룻배를 이용했다.
일제는 식민지 수탈을 위해 1905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면서 항구와 철도가 깔린 부산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1909년 처음으로 도청을 교통이 불편한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도청은 진주 사람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1925년 부산으로 이전한다.
김중섭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도청이 이전하면서 행정도시의 위상을 부산에 내어준 진주는 광복 이후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까지 개통되면서 국가 경제 발전의 축에서도 밀려나 더욱 낙후 지역으로 남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1912년 ‘진주-마산’ 시외버스 운행
진주-삼천포 간 도로개설에 이어 1910년에는 ‘진주-마산’ 간 도로가 개통됐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1911년에는 진주에 거주하던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진주-마산’, ‘진주-삼천포’ 구간의 버스 정기노선 영업 인가를 받고 이듬해 9월 ‘진주-마산’ 노선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앞선 시기의 시외버스 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본격적인 차량의 등장은 수로인 배로는 이틀, 육로인 마차는 하루가 걸리는 마산과의 이동시간을 4~5시간으로 크게 단축하는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역사를 가진 진주 시외버스는 지금은 수도권 등 40여 개의 정기노선을 가지고 있다.
진주는 2005년 통영·대전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면서 서울까지 6시간 남짓 걸리던 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크게 단축되면서 수도권 접근성이 한층 쉬워졌다. 유등축제와 개천 예술제 등 지역축제를 찾는 관광객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진주 인근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의료나 쇼핑 목적으로 진주를 찾으면서 서부경남의 중심도시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다지는 기반이 됐다.
오늘날 진주시외·고속버스터미널은 1995년 지금의 가좌동으로 통합 이전을 결정했지만 구도심 공동화 우려 등의 이유로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업이 완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925년 진주역 개통…내년 100주년
일제는 식민 통치를 위해 1913년 당시 진주와 가장 가까운 항구였던 사천 선진항과 진주 도심을 잇는 철도를 계획했지만 시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다 진주와 마산 간에 1925년 6월 철도가 이어지게 된다. 비록 도청은 떠났지만 여객열차와 화물 열차가 운행되면서 진주는 서부경남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로 떠 올랐다.
1939년 12월 한 달간 진주역의 승·하차 이용객은 3만 명에 달했는데, 당시 진주의 총 인구수가 4만 7259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용객이 상담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진주의인구가 34만여 명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교통과 물류의 기반이 크게 작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21년에 진주역이 마산 관리역 산하에 들어가는, 지위가 격하되는 일이 발생하자 진주 지역사회가 거세게 반발한 이유도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진주역은 2012년 10월 진주~마산 간 복선 전철화 공사로 선로를 옮겨 설치함에 따라 지금의 가좌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역 이전과 함께 운행을 시작한 KTX를 비롯해 ITX-새마을호, 무궁화호까지 진주역을 기점으로 운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 수서역’까지 ‘SRT 경전선’이 첫 운행을 시작했는데, 첫 출발 매진을 기록하며 철도 수요가 여전함을 보여주면서 2년여 만에 다시 관리역으로 승격됐다.
◇교통에서 진주의 미래를 찾다.
진주는 오는 2030년에는 남부내륙철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지금도 KTX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창원으로 우회하는 기존 노선이 아닌 진주로 바로 직행하기 때문에 진주에서 서울까지 2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진주는 이미 포화상태에 있는 기존의 도시 교통을 대신할 ‘미래형 도심항공교통’산업을 선도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KAI)와 회전익 비행체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비행장을 올 11월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미래항공 기체 실증센터 구축을 통해 국내 1호 생산기지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진주는 나룻배에서 철도, 도로, 공항, KTX로 이어지는 교통 변천사를 거쳤다. 이러한 교통인프라가 혁신도시, 국가 항공 산단 등 국가 정책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큰 기반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엔 ‘진주라 천리길’이라는 말은 거리상의 개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천리라는 먼 길도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이 발달한 도시로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글=임명진기자·사진=김지원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진주역 차량정비고(총탄 흔적)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1925년 진주역이 들어서면서 기차를 정비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당시의 독특한 건축양식과 보존 상태가 양호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6·25 때 치열한 전투로 생긴 총탄 흔적이 외벽에 남아 있다. 2005년 우리나라 철도 문화재로 등록됐다.
■진주공항->사천공항
사천공항은 원래 1967년 진주공항으로 출발해 1969년 사천공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6년 한 해 96만9000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통영·대전 고속도로 개통과 KTX 운행으로 2013년에는 11만 6106명으로 이용객이 급감했다. 2010년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을 중단하고, 2015년에는 대한항공마저 적자를 이유로 취항 중단을 통보했다가 서부경남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철회했다. 지금은 진에어가 김포-진주/사천노선, 대한항공이 제주-진주/사천노선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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