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울분의 대한민국, 치킨에 빠지다
[경일춘추]울분의 대한민국, 치킨에 빠지다
  • 경남일보
  • 승인 2024.09.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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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박미영 한국음식문화재단 이사장


얼마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발표한 충격적인 보고서가 있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만성적 울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에 화병을 안고 산다고 한다. 소득 격차, 기회의 상실, 불공정 같은 것들이 울분의 원인이다. 30대가 특히 두드러지고 60대 이상은 적었다. 60대는 인생을 많이 살아낸 세대다. 겸허해질 수 있는 나이다.

그들이라고 울분이 없었을까. 1972년 통일벼가 재배되기 전까지 반만년 보릿고개를 지나온 세대다. 인권이라는 단어도, 불평등의 의미도 모른 채 살아온, 어찌 보면 야만의 세월이었다. 라디오 하나를 끼고 유행가를 듣는 것이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였다. 그러나 당시는 지금만큼 울분은 없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비교 대상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도 없었고 명품도 몰랐다. 최고의 인플루언서는 부모였다. 울분은 맥박, 심장박동, 혈당, 맥박 모두 상승시킨다. 젊은 백내장 환자들이 속출하는 원인 중 하나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가장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겉바촉촉’의 치킨 문화다. 튀김의 바삭함은 행복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소리만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바사삭!’은 곧 행복이다.

13세기 서유럽을 장악한 로마교황청은 사순절 기간 육식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는 더한 욕구를 불러왔다. 유럽인들이 고기대신 먹은 것은 야채와 생선을 기름에 튀긴 음식이었다. 영국의 전통식인 피시앤칩스도 그렇게 탄생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기념일 외식의 상징이었던 전기구이 통닭은 80년대부터 튀김옷을 입고 등장한 프라이드 치킨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프라이드 치킨은 이제 K푸드를 상징하는 대표음식이 됐다.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도 K치킨이 압도적이다. 인터넷 검색어에서 치킨이라는 단어가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행복해서 치킨을 먹고 행복해지기 위해 치킨을 먹는다.

영국 ‘가디언지’의 조사에 따르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것 중 1위가 ‘남의 눈치 보느라 내 인생을 살지 못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남의 눈치 보느라, 눈높이에 맞추느라. 비교로 인한 자기비하 등등 후회하는 요인 대부분이 ‘남’이다. 울분을 없애는 방법으로 나 스스로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기. 인플루언서라는 허상 지우기. 치킨에 앞서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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