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雲門), 운문이란 이름 자체가 몽환적이고 신비스럽다. 구름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슨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바로 천국일 것이다. 그 천국을 불교에서는 극락세계 또는 미륵불의 정토인 용화세계라고 한다. 선업을 지은 사람이 죽었을 때 가는 곳이 천국이요, 극락세계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천국이나 극락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그 꿈을 구현해 놓은 길이 운문사 솔바람길이다. 용화세계를 구현해 놓은 몽환적인 길인 운문사 솔바람길을 탐방하기 위해 멀구슬문학회 문우들과 함께 청도 운문사로 향했다.
진주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려 운문사주차장에 도착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친 뒤 곧바로 트레킹(걷기 여행)을 시작했다. ‘운문사 주차장-운문사-솔숲길-사리암 주차장-937계단-사리암’까지의 왕복 7㎞ 둘레길인 운문사 솔바람길, 초입은 아름드리 노송이 군락을 이룬 솔밭이 우리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휘고 비틀린 소나무들이 도열한 솔숲길을 걸어가면서 노송 여러 그루의 밑둥치에 V자 모양과 하트 모양으로 패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비행기 연료로 공출된 송진 수탈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 일제는 전국에서 총 9539t의 송진을 수탈했는데 그중, 1943년 한 해에만 채취한 송진 양이 4074t이나 된다고 한다. 그 상처가 아로새겨진 흔적을 치료하기 위해 시멘트로 발라 놓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아픈 과거를 솔바람이 씻겨 주고 있는 솔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1500년 고찰인 운문사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신라시대 운문사 뒤 가슬갑사에서 원광법사가 화랑도의 좌우명이 된 세속오계를 전했으며, 고려 때는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이기도 한 운문사는 내려올 때 둘러보기로 하고 솔바람길을 따라 사리암으로 향했다.
◇구름문을 열고 들어선 사리 세상
운문사를 지나자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와 솔숲으로 난 솔바람길이 따로 나 있었다. 무더위 속에서도 솔바람길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키 큰 소나무 아래엔 키 작은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소나무에서 나는 향기와 활엽수가 건네는 그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걸을 수 있었다.
막 목청을 틔웠는지 꾀꼬리 녀석은 서툰 목소리로 탐방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밀화부리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마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처럼 귀를 호강시켜 주었다. 좀 더 숲속으로 들어가자 호거산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등줄기에 맺힌 땀을 씻겨 주었다. 솔숲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가자 사리암 주차장이 나타났다. 사리암 입구라고 쓰인 빗돌이 일주문을 대신해서 서 있는 곳을 지나자 가파른 길이 탐방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m 정도 지나자 사리암 돌계단이 나타났다. 돌계단을 하나하나 헤면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던 탐방객들은 숨이 목까지 차올라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셈을 놓치기 일쑤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 힘을 다해 937개의 계단을 다 올라가 사리암 휴게소에 도착한 사람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얼굴에서는 화엄의 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고행을 통해 마음속에 고여 있던 삿된 생각들을 모두 땀과 함께 밖으로 배출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 그래서 암자의 이름이 사리암(邪離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구름의 문인 운문(雲門)을 열고 가파른 계단을 걸어 오르는 고행을 통해 삿된 마음을 멀리 떠나보내어 사리(邪離)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바로 극락이요, 용화세계가 아니겠는가? 사리암 건너편에 펼쳐져 있는 학산과 운문산의 풍경이 마치 천국처럼 보였다. 마음의 삿됨을 떨치고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나반존자가 건네는 솔향 같은 삶
넋을 잃고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다가 일행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뒤 나반존자를 모셔놓은 천태각과 사리굴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관음전 앞까지 길게 늘어선 줄이 있어 줄을 선 까닭을 물으니 천태각 참배를 위해서라고 했다. 필자는 먼저 사리굴부터 찾았다. 옛날에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이 먹을 몫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보살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구멍을 넓혔는데 그때부터 쌀이 나오지 아니하고 물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사리굴에 얽힌 전설이 건네는 교훈을 되새기려는 듯 많은 불자가 가부좌를 한 채 명상 수행을 하고 있었다.
사리굴 바로 옆에 나반존자상을 모셔놓은 천태각이 있었다. 천태각 참배를 위한 참배객들의 줄이 사리굴 참배를 마치고 나왔을 때까지도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기도발이 잘 받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줄은 선 사람들의 수가 엄청 많았다. 나반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을 제도하고자 원력을 세운 분으로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아픔을 씻어주는 분이라고 한다. 나반존자의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줄을 선 사람들의 소원이 소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반존자상을 모신 천태각에 참배를 드린 뒤 운문사로 되돌아왔다. 삿된 마음을 버린 상태에서 머문 용화세계에서 구름을 열고 다시 내려오자 몸과 마음이 무척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운문사 경내엔 천연기념물 180호인 수령 500년 ‘처진소나무’가 멋진 풍경을 연출해 놓고 있었다. 땡볕에 시든 상념들엔 그늘이 되어 주고, 지친 발걸음엔 쉼터가 되어 주는 처진소나무의 푸른 이마 너머로 세상을 굽어보는 호거산의 근엄한 모습이 솔향처럼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을 필자에게 건네는 것 같았다.
박종현 시인, 멀구슬문학회 대표